좀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그간 좀 바빴던 터라;;; 죄송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무예는 쌍수도와 왜검 그리고 교전 입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죠.
바로 왜로부터 기원한 무예라는 것입니다.

물론 차이점도 있습니다.
쌍수도의 경우 왜의 칼을 보고 그것을 모태로 하여 만든 것이고
왜검은 왜에 가서 직접 배워온 것이며
교전은 배워온 왜검을 토대로 창작한 것입니다.
여하튼 이 세가지는 무예도보통지의 무예 중 그 기원을 일본에 두고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럼 우선 쌍수도부터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쌍수도는 여러가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쌍수도란 이름은 양손을 사용한다는 문구에서 비롯된 것이구요.
그 외에 용검, 평검, 장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쌍수도는 본래 장도長刀라는 이름으로 무예제보에 수록되었습니다.
당시 무예제보는 왜군을 상대하기 위한 전법인 절강병법의 원앙진에 필요한 시급한 무예를 수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쌍수도 즉 장도는 원앙진에는 필요 없는 병장기 였으나 무예제보에 수록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조총수에게 쌍수도를 들도록 하여 조총사격후에 근접전을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또한 가왜라고 하여서 군사훈련시 가짜 왜군 역할을 하는 병사들이 쌍수도를 들도록 하였던 것 입니다.

쌍수도는 원래 칼날의 길이가 5척이며 그 중 동호인(날을 보호하는 구리)이 1척 자루가 1척5치로 총 6척 5치의 길이였다고 합니다. 환산하면 총 길이가 거의 2미터 가까운 엄청난 길이죠... 
무예도보통지에 이르길 왜인들은 1丈을 뛰어와서 칼을 휘둘러 병사들을 양단했다고 합니다.
이 기세에 병사들이 눌려서 대적하기 힘들었다고 하고요.
만약 사실이라면 5미터 전방에 있던 적이 한 순간에 가격을 하였던 셈이니 엄청났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때에는 이미 제도가 바뀌어 검법은 쌍수도를 운용하는 검법이었지만 칼은 요도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무겁고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다음은 쌍수도의 총도입니다.
전진한 후에 초퇴방적, 재퇴방적, 삼퇴방적세로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원지로 돌아가라고 적혀있고 다만 그림 표기는 한 번만 하였는데요
이 것은 한 번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반복을 생략한 것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다음은 왜검입니다.
왜검은 같은 이름으로 
무예제보번역속집에 수록되었었지만...
그 내용은 다릅니다.
무예제보번역속집에서는 교전의 형태였죠.
또한 기효신서에서 비롯한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의 왜검은
숙종 당시 김체건이란 군관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서
그 비법을 얻어온 것이었던 겁니다!!! (스파이죠. 지금으로 치자면.. 군사기밀을 빼온 셈이니..)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일본도의 우수함은 세계에 알려져 있었나 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자들도 왜검의 우수함을 인정하며 중국도 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적어놓았습니다.

왜검보에는 4가지 유파의 검술을 적어놓고 있습니다.
그 유파는
토유류, 운광류, 천류류, 유피류 입니다.
김체건이 이 4가지 유파의 검술을 얻어왔으나 이미 산실되어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할 때에는 운광류만 행해졌다고 합니다.
이 4가지 유파의 검술은 일본에도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조선세법은 중국에서 찾아오고... 왜검은 조선에 있고... 참 아이러니 하죠;;
이에 대해서 그 유파의 검술이 일본을 대표할 만한 검술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없어진 것이라 설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조금 궁색하기도 합니다.

여튼 이렇게 4가지 유파의 검술이 있기 때문에 왜검편에는 총도가 4개 수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지금부터 이야기할 교전보까지 합치면 5개가 수록되어 있는 거죠.
교전은 앞서 말한 것처럼 왜검을 바탕으로 김체건이 새롭게 창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따로 교전보라고 칭하였으나, 본디 왜검에서 비롯된 것이라서 왜검보의 뒤에 함께 붙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래의 교전보는 양날의 검으로 그려져 있었으나, 지금은 외날인 요도로 하였다고 합니다. 교전을 수련하는 중의 사고를 염려해서라고 하네요.
그래서 교전을 익힐때는 가족으로 몇 자되는 나무를 감아싸서 요도를 대신하여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칼을 목도라고 하였다고 하네요..

쌍수도와 달리 왜검과 교전에는 세명이 없습니다.
교전을 시작할때에 견적출검세가 있긴 하나. 그 뜻을 풀이해보면 알 수 있듯이(적을 보고 검을 뽑는..) 그리 의미 있는 동작은 아니죠..
대부분의 설명이 우수우각 혹은 우수좌각 등 손과 발의 좌우를 통해서 동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왜검과 교전의 총도에는 세명 없이 그림만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혹시 그림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면 다른 것들에 비해서 찾기가 더 힘들것 같군요^^;

밑에는 교전보의 그림 중 하나 입니다.

이하는 십팔기보존회의 쌍수도 시연 영상입니다.
2미터는 되지 않지만 실제크기의 쌍수도에 가깝게 재현하여 보았습니다.


이상으로 쌍수도와 왜검, 교전 편을 마칩니다.^^


무예도보통지의 무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본국검이 아닐까 싶습니다.
본국검은 그 명칭에서 부터 한국 고유의 전통무예라는 기운이 팍팍! 풍기기 때문이겠죠.

제가 어렸을 때 다녔던 합기도장의 한켠에 본국검 총도가 걸려있었습니다.
검도를 하는 단체 중에서 본국검을 모르는 단체는 없을 겁니다.
또한 본국검협회라는 사단법인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무예단체들이 전통무예를 표방하면서 본국검의 명칭을 많이 이용했죠.
네이버에서 "본국검의 비교" 라는 키워드로 검색하시면 다양한 단체의 본국검 영상을 한꺼번에 올려놓은 게시물이 검색됩니다.
한번 비교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딴소리는 이만하고 무예도보통지의 본국검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본국검에 또 다른 명칭으로 신검(新劍)이라고 불립니다.
이 본국검은 예도와 같은 요도로써 수련합니다.
본국검의 기원을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자들은 신라의 화랑이었던 황창랑에서 찾습니다.
나이가 7세였던 황창랑이 저자에서 검무를 추어 유명해지고
백제왕에게 불려가 검무를 추게 되었는데, 이 기회를 틈타 백제왕을 찔러 죽이고 백제인에게 죽었다는 <여지승람>의 고사를 인용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검무 중에 황창랑과 관련된 검무가 아직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러한 이유로 신검이라는 별칭이 신라검의 신검이 아닌가? 하는 주장도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조선세법 24세를 통해서 새롭게 만든 것이기 때문에 신검이라고 하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앞서 2008/11/24 - [무예/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7) - 예도
에서 무비지에서 검법을 조선에서 얻어왔다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고 소개했었습니다.
본국검의 설명에서도 그 이야기가 반복되어서 나옵니다.

"본국검의 연기(緣起)를 황창랑으로 인하여 신라로 잡지만, 신라때의 검술인가에 대해서는 고증할 수가 없다." 고 말하며
모원의가 조선에서 검보를 얻었다고 하였으나..
그 창안과 그 저수는 물론하고 모원의의 세대와도 시간이 흘러 상호간에 주고받은 것이 누구인지도 확실히 모른다.
본국의 사람들은 어찌하여 스스로 전수하고 스스로 이습하지 아니하고 꼭 무비지를 기다려서 전습하는 지 모르겠다. 하며 본국검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도와 본국검에 있어서는 조선의 무예에 대한 자존심이 나타나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본국검은 그 이름에서 이미 本國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니까요.
또한 예도와 본국검은 다른 검법에 비하여 세가 많아 투로가 깁니다.
그만큼 어렵기도하구요.

아래는 본국검 총도입니다.
밑의 본국검 영상과 비교하여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7번째 이야기 입니다.
저번 6번째 등패와 낭선을 소개함에 따라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중 찌르기의 무예가 완결 되었습니다.

예전에 무예도보통지라는 책을 설명하면서 무예도보통지는 십팔기를 3가지로 구분하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찌르기, 찍어베기, 치기 의 세 종류였는데요.
찌르기는 창류, 찍어베기는 검 혹은 칼, 월도 등이고요, 치기는 권법과 곤봉 편곤의 류입니다.
그래서 찌르기는 이제 다 소개하였고요.
드디어 칼입니다.

칼이라고 하니 좀 품위가 없군요.. 도검류? 검술?
여하튼 찍어베기의 무예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칼을 사용하는 무예가 매우 많이 있습니다. 그 분량도 총4권 중 2권과 3권의 두권을 차지하고 있죠.
사실.. 이미 전 편에서 등패를 통해서 이미 찍어베기의 무예가 소개되었습니다.
등패는 사실 방패이지만 요도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무예도보통지 내에서 찍어베기 무예의 분류 중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하튼 이번에 소개해드리고자 하는 것은 예도입니다. 본래의 명칭은 단도(短刀)였다고 합니다.
혹은 조선세법이라고도 합니다.
조선세법이라고 하는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때에 척계광의 기효신서와 모원의의 무비지를 많이 참조하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중 모원의의 무비지에 이러한 말이 나옵니다.
"옛날의 검은 전투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당태종 때에는 검사가 1천명이나 있었다. 지금은 그 법이 전하지 아니하고 단간잔편 가운데 결가가 있으나 그 설명이 자세하지 못하다. 근래에 호사자가 있어서 조선에서 그 세법이 구비된 것을 얻었다."
이렇게 말하며 모원의는 그 세법 24가지를 조선세법이라 명명하여 무비지 검편에 적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를 만들 당시 조선은 이 조선세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때문에 조선에서도 진실로 조선에서 중국에 전해진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해 받았다는 사람이 말했으니 아마도 조선에서 간 것이 맞겠죠?
이 때문에 이 예도를 조선세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예도보는 이 때문에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예도보는 무비지의 검편에 조선세법을 다시 그려서 24세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예도의 경우 투로의 형태가 아닌 각각의 세의 나열이라는 형태로 적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원 무비지에는 없는 4가지 세인 태아도타세, 여선참사세, 금강보운세, 양각조천세,
를 더하여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 총도와 총보의 경우에는
앞서 예도보와는 달리 투로형태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도보에 나와있는 28가지 세를 전부 사용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해범 선생님의 무예도보통지의 무예 중 칼류를 해제한 본국검에서는
본국검
카테고리 취미/스포츠
지은이 김광석 (동문선, 1995년)
상세보기
예도보는 조선세법24세라는 표현으로 해제하시고
예도총보를 예도라는 이름으로 2가지로 나누어서 해제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이 두가지 모두 예도라는 이름으로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도 총도입니다.


다음의 영상은 십팔기보존회에서 조선세법의 24세를 연결하여 시연한 것입니다.



그 다음 영상은 EBS 다큐프라임 영상무예도보통지에서 예도총도를 재현하는 장면입니다.


아 그리고 이 무예도보통지의 예도편에서는 당시의 칼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전에 장창에서 그랬듯이 이 예도는 환도(요도)를 사용하는 첫 종목이기 때문에 칼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철에 대한 내용이지요.
옛날의 칼과 철의 재련법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이 부분을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예도편이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무예는 등패와 낭선입니다.
낭선으로써 찌르기 종류의 무예는 마지막입니다.
거기에 왜 등패를 같이 소개하는가 하면,
이 등패와 낭선은 진중에서 그 쓰임이 같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등패와 낭선은 여러 병장기로 진형을 이루었을 때
수비를 담당하는 병장기였다는 것입니다.
그럼 등패부터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등패는 등나무를 엮어서 만든 방패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름이 등패인 거죠.
그 모양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오른 쪽의 등패가 중국의 양식이며 가운데 2개가 조선시대의 양식입니다.
그 차이는 등패의 크기입니다.
무예도보통지에서 말하길 "지금의 제도는 등패의 직경이 3척 7치로 앉아서 은신하기에 부족하다. 마땅히 조금 넓혀서 화식처럼 한다." 고 하였습니다. 주척으로 보면 90센티가 조금 안되는 길이네요.
그리고 손잡이부분을 만드는 방식도 다르다고 하네요.

등패는 요도와 함께 쓰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밑의 그림처럼 말이죠.
요도는 허리에 차는 칼이란 뜻으로 요도라는 명칭에는 특별히 규격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
본국검, 쌍검 도 모두 요도라고 말하지만 그 길이와 형태는 각각 차이가 있습니다.
여튼 등패의 요도는 본국검이나 제독검 등에 사용하는 요도보다는 짧으며 쌍검보다는 약간 큰 편입니다. 그리고 휘어져 있는 모양이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의 그림에는 별로 휘어져 보이진 않네요;;;

또한 등패수들은 표창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표창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본 닌자들의 표창은 아닙니다.
이 표는 던져서 살상하는 무기라는 뜻을 가진 글자로서 그러한 무기들을 표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의 선두에 있다가 적이 다가오면 표창을 던지고 바로 요도를 뽑아 들어서 돌격하였다고 하는군요.
중국과 조선에서 사용한 표창은 그야말로 짧은 창의 형태로 처음 그림의 가장 왼쪽과 같았습니다.

이 등패의 기원은 무예도보통지에서 밝혀놓은 것으로 보면 중국의 남만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베트남 쪽이 되는 건가요?
여튼.. 삼국지에 보면 등갑병이 나오죠?
그 등갑병의 등도 또한 등나무의 등자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등패편에는 이 등갑을 만드는 법이 또한 기록되어 있습니다.
<圖說>에 이르길 "적등 50근을 석조(돌로만든통)에 넣고 보름동안 침수시켜 건져내어 3일간 햇볕에 말렸다가 다시 석조에 넣고 물을 더 붓는다. 이와 같이 물이 충분히 스며들도록 한 번 두루 하는데 1년 동안 하여 햇볕에 바짝 말린다. 엮어서 꿰는 법식은 모두 20개로 나누어서 그 곁에는 오동나무 기름을 바르는데 기름을 칠한 그 등갑은 가볍고 견고하여서 능히 화살과 칼날도 막을 수 있다." 라고 기록하고 있네요.
여튼 중국의 기록에서 보면 남방에서 남만이 등패와 표창을 잘 썼다는 기록이 여럿 존재합니다. 그래서 그 기원을 남만이 아니었겠는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등패 총도와 십팔기보존회의 등패 시범 영상입니다.
총도와 비교하면서 보시면 좋은 것 같습니다.

다음은 낭선입니다.
낭선이라는 이름은 정말 생소하실 것 같습니다.
낭선은 대나무의 끝에 날을 달아 사용하는 창으로 그 가지를 9층을 살려서 방어의 기능을 높인 무기입니다. 밑의 그림을 보시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낭선의 길이는 장창과 같아서 1장 5척입니다. 약 3미터가 넘는 길이입니다.
그런데 낭선은 왜 그 가지를 그대로 남겨두었을 까요?
그것은 낭선의 가지의 끝에 날을 달아서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낭선은 척계광이 왜군과 상대할 때에 논에서 전투가 있을때 진의 주변에 철질려나 거마목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낭선을 활용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이 가지끝에 붙어 있는 날에는 독약을 발라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등패편에 보면 등패는 반드시 낭선의 아래에 두어야 한다고 써놓았습니다.
낭선을 통하여 등패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등패는 방패이니 당연히 방어의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것입니다.
낭선 또한 이처럼 등패를 엄폐하여 등패의 방어력을 극대화하고 또한 낭선자체도 크기를 통하여 진형 전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아래의 영상은 EBS 다큐프라임 영상무예도보통지 1부 무의시대 중 한 장면입니다.
조선시대의 병사들이 진을 이루어 일본군과 접전하는 모습을 재현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면 앞에 등패와 낭선이 도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등패와 낭선은 진에 선두에서 방어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등패와 낭선의 비호아래 장창과 같은 공격력이 강한 무기로서 적을 제압하였던 것이죠.

이 동영상에는 앞서 설명했던 장창, 당파 또한 등장합니다. 또한 그 외에도 조총과 활쏘기가 등장하여 조선시대의 전법을 단병과 장병을 통틀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등패, 낭선, 장창(2), 당파> X 2 이런 형태를 원앙진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것은 동영상을 통하여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상 등패와 낭선 편이었습니다.

이거... 남한산성 등산문화축제 공연 하나로
너무 재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만;;;



이 영상은 14분 정도 되는 공연 장면 전체에 해당하는 것 입니다.
제가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연재를 통해서 이미 설명한 기예도 있고
아직 연재하지 못한 여러가지 기예가 나옵니다.

십팔기의 다양한 기예들을 먼저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소개할 기예는 당파입니다. 위의 그림에 병사가 들고 있는 것이 바로 당파입니다.
흔히 삼지창 정도로 알고있을 것 입니다.
그리고 요새는 줄어들었습니다만... 예전에 사극에서 포졸들이 항상 들고나왔던 병기가 바로 이 당파였습니다. ^^
그 때문에 당파를 병졸들이 들고다니는 하찮은 무기로 여기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파는 매우 담이 있는 병사가 써야하는 무기였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당파의 세 갈래의 날을 이용해 적의 무기를 방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파는 창에 비해서는 짧은 편입니다. 아무래도 힘을 써야했기 때문이겠죠.
앞서 장창편에서 말씀드렸듯이 장창의 길이는 15척이었던 반면에 당파의 경우는 7척 6치 정도로 거의 반정도밖에 안되는 길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병기를 방어하기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죠.

그리고 또한 척계광의 기효신서에서 기예를 시험하는 비교편에 당파에 대한 내용에는 창과 대적하는 시험을 보는데, 이는 매우 어려워서 10번시도하면 9번은 실패한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시험하느냐.. 창이 찔러들어올때에 병사가 얼마나 동요하지 않는가가 그 평가기준이었던 것입니다.




위의 그림처럼 무예도보통지의 당파편에는 세가지 종류의 당파가 그려져 있습니다.
오른쪽에서부터 살펴보면 가장 오른쪽의 것이 무예도보통지의 주요 참고도서인 기효신서와 무비지에 실려있는 당파의 그림입니다. 중국의 법식인 것이죠.
그 다음 가운데에 있는 것은 훈련도감에서 명나라의 것을 구입한 것을 본떠서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의 특징은 세 개의 창날이 합쳐지는 부분에 주석으로써 합쳐서 만든 것입니다. 때문에 견고하고 예리하다고 하네요.
마지막 가장 왼쪽의 것이 우리나라의 형식인데요.
우리나라의 경우 세 개의 날을 따로 만들어서 가운데 날 가운데 구멍을 뚫고 양쪽의 날을 조립하여 탈착이 가능하도록 만든다고 합니다. 때문에 새로 만드는 것은 2번째 명나라제와 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써놓고 있습니다. (당파의 경우는 중국제가 더 좋았네요;;; ㅎㅎ)

당파(鎲鈀) 는 흔히 파鈀라고만 하기도 합니다. 무예도보통지에서 말하길 이 파를 사용하는 무가가 다섯이 있다고 합니다. 웅우출진파, 산문칠매복파, 번왕도각파, 직행호파, 초란근진파가 그것이라고 합니다. (이 때 파는 당파할때 파입니다;;; ㅎㅎ)
그리고 파鈀는 곧 차叉라고 모원의가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叉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으로는 닌자거북이의 빨간.. 라파엘이 쓰는 것을 흔히 쌍차라고 하더군요..




이 당파의 경우 화전을 발사하기위한 지지대의 역할도 하였다고 합니다.
바로 위에 보시는 사진처럼 말이죠.
화전은 화살에 화약통을 달아서 화약의 추진력을 통해서 날라가는 일종의 로켓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얼마전 영화로 나온 신기전도 화전의 하나인 것이죠. 제가 알기로는 가장 큰 화전이 신기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신기전화차에 신기전이란 화살을 꽂아서 다연발로켓포가 완성되는 것이었죠.
이를 위해서 무예도보통지에도 당파를 만들때 두 곁가지를 평평하게 하여야 한다고 명기하고 있습니다.

위에 보시는 것은 당파의 총도입니다. 

 
이것은 제11회 광주왕실도자기축제에서 있었던 당파의 시연모습입니다.
개인기술로 시연함에 따라 무예도보통지에 있는 당파의 투로에 기반하여 몇가지 창법을 첨가하여 시연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상으로 당파편이었습니다.

 

 




일전에 이미 EBS에서 제작한 다큐 <영상무예도보통지>에 대해서 알려드린 바가 있습니다.
바로 이거죠 ---->> (2008/07/20 - [무예/십팔기] - EBS 다큐프라임 "영상 무예도보통지" 1부 - 무의 시대 다시보기)

위의 영상은 다큐의 내용 중에 일부를 잘라놓은 것입니다.
다큐멘터리 전체를 다시보고 싶으시면 전에 써놓은 글의 링크를 통해서 이동하시면 됩니다.^^
위의 장면은 십팔기보존회의 시범단장 및 시범단이 수고하여 주셨습니다.
영상의 컨셉은 보시는 것과 같이 십팔기를 익힌 고수 1인과 자객 3인의 결투입니다.
십팔기를 익힌 고수는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할 때 실기를 담당하였던 백동수를 모델로 하였습니다.

월도를 들고 백동수역할로 연기해주신 분이 시범단장님이시며,
창, 왜검, 쌍검을 들고 자객 역할을 하신분들은 십팔기보존회의 시범단원분들입니다.

십팔기보존회에서는 십팔기를 수련하면서 무예도보통지에 나와있는 여러가지 기예를 이용하여, 합을 짜서 겨루는 교전을 연습하고 또한 공연을 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교전은 월도와 창이 겨루는 월도창교전, 그리고 창과 칼이 겨루는 창검교전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것은 기창들 입니다.
기창은 한글로 하면 두가지 모두 기창이지만
깃발이 달린 창인 旗槍과 말을 타고 운용하는 騎槍, 즉 마상창이 있습니다.

둘 모두 창류로서 무예도보통지 권1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권1의 순서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장창 죽장창 기(旗)창 당파 기(騎)창 낭선 입니다.

이 순서를 보면 창과 같은 류를 설명함에 있어서 장창 죽장창 기(旗)창 당파를 설명하고
그 뒤로 기(騎)창 을 설명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다른 마상기예도 마찬가지 인데요.
월도를 설명한 뒤에 마상월도를
쌍검을 설명한 뒤에 마상쌍검을
편곤 다음에 마상편곤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뒤에 말씀을 드리겠지만 다른 기예들과는 달리 마상기예에는 총보와 총도가 없습니다.

이는 마상기예들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독립된 형태가 아닌 각 병기의 운용법의 하나로 파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기(騎)창의 뒤에 낭선을 서술한 것입니다.
낭선은 다른 창류와 달리 낭선은 척계광에 의해서 고안된 병기로 창류와는 그 기원이 다르기에 따로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낭선편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기창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깃발을 단 창인 기창旗槍입니다.
기창은 장창에 비하여 길이가 짧습니다. 자루가 9척 창날이 9치로 되어 있는데요.
이는 주척으로 계산하면 대략 2미터가 조금 넘는 길이입니다.
때문에 이 기창을 단창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본래 기창은 군대의 진중에서 무기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사극을 보면 지휘관이 목소리를 통해서 지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물론 우리나라의 사극에서 처럼 소규모의 전투만을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외국의 영화같은 것에서 보면 북과 같은 소리 그리고 깃발로써 군대를 지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좀 아쉽군요;;; 우리나라도 그런 멋진 전투씬이 만들어지면 좋을텐데요..)
이처럼 기창은 명령을 하달하고 응답하는 전시 군령전달체계로서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왕의 주위에서 의전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구요.

하지만 조선에서는 기왕에 기창에도 날이 달려있음에 그것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하여 보를 만들어서 전하고자 기창의 연습법을 만든 것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 메는 호미와 곰방메도 병기가 된다. 지금은 별도로 하나의 창으로 갖추어서 그 세법을 익힌다."고 하였습니다.
즉, 당시 우리나라에서만 전하는 독창적인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그 세명에서도 특이한 현상이 보입니다.
앞서 "2008/10/10 - [무예/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3) - 장창, 죽장창" 에서 죽장창을 세명을 설명했을 때에
진왕점기와 한신마기라는 세가 나왔었습니다.
하지만 기창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진왕마기와 한신점기라는 세가 보입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이것도 기창이 우리나라에서 만든 독창적인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명칭을 바꾸어서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실 진왕마기 혹은 한신점기에서 동작상 중요한 것은 마기와 점기라고 생각됩니다.
마기의 마자는 磨(갈다)이며, 점기의 점자는 點(점찍다)입니다. 기자는 둘다 旗이구요.
이는 죽장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왕이나 한신은 진나라의 왕, 그리고 한신은 우리가 잘 아는 그 한신을 뜻합니다.
결국 동작상에서는 비슷한 세이지만 표현을 일부러 달리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다음은 기창의 총보의 그림입니다.



다음은 2008.10.5 경기도 광주왕실도자기축제에서 있었던 십팔기보존회의 기창영상입니다. 위의 기창 총보와 비교하여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예도보통지의 기창보와 그 후에 창의 기법을 더하여 시연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음은 마상창, 기창입니다.
기창편의 내용은 기창에서 사용하는 창에 대한 설명과 기창의 무과시취제도를 설명하고 있고, 그 뒤로 기창보와 기창교전보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총도나 총보의 형태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와 같이(채색은 안되어 있습니다만;;)
각 세에 해당하는 그림만이 있을 뿐입니다.

기창에서 사용하는 창은 보장창과 같은 크기라고 합니다. 즉 15척, 약 3.5미터 정도입니다.


기창교전보의 경우에는 두명의 마병이 서로 창을 부딪히고 있는 한장의 그림에 모든 설명이 다 기록되어 한페이지로 설명이 끝납니다.

본래 무과에서 기창을 시험할 때는 騎芻라고 하여 세개의 추인(허수아비인형)을 찌르고 돌아오는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무예도보통지에 나와있는 기창보는 그와 다릅니다. 하지만 연습하는 법이기에 싣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땅위에서 하는 것에 비해 마상에서 하는 것은 단순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창은 매우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세명을 보아도 쉽게 알수 있는데요.
첫 시작하는 세인 신월상천세 이외에는
좌전일자, 우전일자, 좌후일자, 우후일자 와 같은 형태입니다.
좌우전후는 방향을 일은 一이고요. 자는 刺(찌르다)입니다.

기창교전보는 서로 150보떨어졌다가 서로 달려서 창을 한번 부딪히고, 다시 돌아서 부딪히고를 세번한다라고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는데요.
실제 기록에서 보면 기창교전은 매우 위험하여 부상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글로 보면 간단할 것처럼 보이지만요;;;

그럼 이상으로 기창편이었습니다.


창은 "무예의 왕이다"라고 하죠
이 말은 무예도보통지의 곤봉편에 나와있습니다.
앞서 연재했을 때는 곤봉과 관련한 말이 아니라서 말하지 않았습니다만
"世傳長槍固藝中之王" 이라고 쓰며 그 뒤에 창 또한 무예중 으뜸이다라고 쓰고 있죠.
그리고 그 말에 이어서 무예계의 속담(諺)에 이르길 '천번 내려치는 것이 한번 찍어 치는 것(찌르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을 써놓았습니다. 그만큼 창이라는 병기가 중요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듯이 장창은 무예도보통지의 가장 첫번째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4권으로 이루어진 무예도보통지의 첫번째 책을 장창, 죽장창, 기창(旗槍), 당파(삼지창), 기창(騎槍), 낭선의 창류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장창도 여타 기예처럼 일단 처음에 중국식의 창과 우리나라의 창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왼쪽이 우리나라의 형태&#13;&#10;오늘쪽이 중국의 형태입니다.



중국식과 우리나라식의 차이는 잘 보이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식에는 창날에 혈조(날의 가운데 홈이 파여있는 것을 혈조라 합니다.) 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밑에 둥근 원판인 석반이 있다는 것과 창의 자루 끝에 뾰족한 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혈조라는 것은 요즈음의 대부분의 도검에서 보입니다. 그 기능에 대해서는 확실한 정설은 없지만 찔렀을 때 날을 다시 뽑기 용이하기 위함이라고 흔히들 알고 있습니다.
이 석반 또한 창날이 과도하게 박힘을 방지하는 용도이기도 하며, 특히 이 석반의 끝을 날카롭게 갈아서 적들이 창자루를 잡지 못하도록한다고 무예도보통지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장창의 길이는 1장5척으로 주척으로 환산하면 3미터가 좀 넘습니다.
위의 그림에 장창옆에 써있는 글은 장창을 만드는 법인데요.
창의 자루끝부분은 손으로 잡았을때 남음이 없도록 꽉차야하고 중간에서 날부분으로 갈수록 점차 가늘어져야 한다고 써있습니다.
(같은 힘이라면 접촉면이 작을 수록 그 충격력이 크기 때문이겠죠?)

그 뒤로 장창편에 나오는 내용의 많은 부분이 장창을 만드는 나무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 이유는 장창이 진영에서 가장 주된 공격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견고하고 잘 만들어야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여튼 어떤나무를 사용하는 지에 대한 내용말고는 창은 양가창이 이화창이라 하여 유명하다라는 내용을 싣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창을 쓰는 법으로 유명한 것은 사가창, 마가창, 금가창, 장비신창, 오현신창, 괴돌창, 괴도창, 아미창, 월창, 지설창등이 있다고 합니다.
장비나 아미 같은 것은 많은 들어본 말이네요. ^^ 역시 장비하면 창이죠 ㅎㅎ

이 이화창은 창에서는 매우 유명합니다. 무예도보통지에도 그 내용을 여럿담아놓았는데요
왕명학이라고 하는 명나라 만력14년에 무과에 급제한 장수가 말하길 "장창의 법은 양씨에게서 비롯되어 이화라 하였는데 천하가 모두 숭상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화창에 대해서 색다른 기록도 있습니다.
왕사의 라는 사람이 남긴 기록인데요. " 이화창이란 이화 한통을 장창의 머리에 매어 달아서 적을 맞아 싸울때에 이화통을 한번 발사하면 몇장이나 멀리 날아가서 상대에게 그 약이 닿으면 즉사하고 창은 여전히 적을 찌를 수 있으니 곧 제일가는 화구가 된다" 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척계광이 논한 창세는 이화창이긴 하나 화구는 아니라고 하네요.

전에 권법의 경우 송태조 장권32세에 기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장창의 경우 장창24세라고 흔히 유명하데요.
1598년 무예제보의 편찬을 맡았던 훈국랑 한교가 명나라 장수들을 통해서 12세만을 알 수 있었고 스스로 연구한 끝에 나머지 12세도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그 결과 장창의 경우 전보와 후보로 나뉘어서 각각 12세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죽장창의 경우는 특별히 비교설명이 없습니다.
실제로 죽장창의 경우 그 길이가 20척으로
주척으로 해도 4.5미터 이상입니다.

이 정도 길이면.. 특별히 어떠한 것을 더 첨부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장창은 무예도보통지에 보면 "지금은 전죽(통대나무)위에 얇은 칼날을 시설하여 사용"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통대나무를 사용한 경우 그 강도가 약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척계광은 나무자루로 바꾸어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죽장창은 견고하고 날카로우며 그 허리에 탄력이 대단히 강했다고 합니다.




총보를 보면 태산압란세 이후 진왕점기세 3회 금룡파미세 3회 단봉무풍세 3회 한신마기세 3회 이후 백원타도세 철번간세를 한번씩 하고 금룡파미 단봉무풍 한신마기 백원타도세를 연달아 하고 마치도록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같은 동작을 여러번 반복하는 것을 보면 긴 죽장창을 이용하여 힘을 기르는 것이 주목적의 하나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당시 사람들의 평균신장은 150정도 되었을까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리 크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자기 신장의 2-3배가 되는 무기들을 들고 수련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굉장히 위용있었을 것 같습니다.



위의 영상은 2008.5.4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있었던 십팔기보존회의 장창 공연입니다.
장창의 전보만을 각색하여 시연하였습니다.
지난 번에는 무예에 근본이 되는 권법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럼 다음차례는 무예의 기본이 되는 곤봉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책에 써있는 바대로 하면
"곤은 모든 병기를 이용하는 세는 곤법의 외형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입니다.
즉 권법은 무예를 함에 있어서 몸을 움직이는 데이 근본이 되는 것이고
곤봉은 병장기를 익힘에 있어서 그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번째로 소개하는 기예를 곤봉으로 선택하였습니다.
참 요즘 보니 이 곤봉을 곤방으로 부르기도 하던데요.
그것은 무예도보통지에 보면 곤봉의 棒자가 당시 음이 방이었다고 표현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현대에는 이 글자를 모두 봉이라 읽으니 곤봉이라고 읽고 써도 될것같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곤방보다는... 곤봉이 어감이 좋아서;;;;

일단 무예도보통지의 곤봉편을 보면
다른 편과 마찬가지로 곤봉의 그림이 나옵니다.
헌데 이 그림은 우리가 아는 곤봉의 그림과는 달리 날이 붙어있습니다.
마치 창과 같은 형태이죠. 그것은 곤봉을 군중에서 사용하기 위해서 작은 날을 달아놓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척계광대에 이르러서 날을 달은 것 같다고 무예도보통지의 저자들은 써놓고 있습니다.

여튼 곤봉의 그 길이가 7척이고 무게는 3근이라고 합니다.
이때 척은 영조척과 주척이 있는데.. 영조척은 30.3cm 주척은 23.1cm 입니다.
어떤 것이 맞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목공에는 주로 영조척이 쓰였다고 하는데... 그림의 비율로보면 주척이 더 맞는거 같기도 하고.. 여튼.. 제가 실제 유물을 보지도 못하였고.. 나무로된 봉이 유물로 남아있을 것 같지도 않고.. ㅎㅎ

다음으로 <병장기> 라는 책에 곤봉의 제도에 대한 내용을 적어놓습니다.
그 책에는 곤봉에는 6가지 제도가 있는데 모두 견고하고 무거운 나무로써 만든다고 써놓았다 합니다.
길이 4-5척에 윗부분을 철로 싼 것을 가려봉이라 하고
머리부분에 날을 달고 아래에는 거꾸로된 쌍갈쿠리로 만든 것을 구봉
날은 없고 철조를 단 것을 조자봉
윗부분에대 곧은 침을 심어 이리 어금니처럼 한 것을 낭아봉
봉의 양쪽 끝을 모두 큰것으로 낭아처럼 한것을 저봉
도리깨같은 류는 철연협봉이라 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곤봉은 다른 병장기로 변용하여 사용하기도 하였기에 더욱 병장기의 기본이라 하였던 것 같습니다.

다음 내용은
권법편에서도 나왔던 것처럼 곤봉과 같은 뜻으로 고전에 전해지는 한자들을 밝히고 있습니다.
수(), 정(), 그리고 한조의 관명인 집금오의 금오 등이 모두 봉을 뜻하는 글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모원의는 곤과 봉은 같은 것이라 말합니다.
흔히 전하기를 곤은 한쪽끝이 다른 한쪽 끝보다 굵은 것을 곤이라고하고
양쪽의 크기가 같은 것을 봉이라고 한다고 하죠.
하지만 그 용법이 큰 차이가 있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바로 정종유의 <소림권법천종> 중 파곤제1로보 부터 파곤제6로보까지 싣고 있습니다.
이는 모원의의 무비지를 참조하면서 파곤만을 뽑아 넣은 것 같습니다.
이 파곤편은 서로 대련하는 연습법입니다.
실제 무예도보통지의 곤봉편도 그 보는 대련하는 법만 있습니다.
그에따라 소림곤법천종의 내용중에서도 대련부분만 이용한 것 같습니다.

여튼 곤봉하면 역시 소림곤이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나봅니다.^^
마지막으로 그 내용이 나오는데요
그 내용을 살펴보면

임진왜란때 중국의 장창, 우리나라의 편전, 일본의 조총이 천하에 유명해졌다.
세대로 전하여 내려오는 장창은 실로 무예중 왕이며 곤 또한 무예중 으뜸이 된다.
곤은 창의 반단(半段)인데 척씨가 날을 덧붙였으니 창과 곤은 표리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병기를 운용하는 신수족의 세는 곤법의 외형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때문에 모원의도 곤을 모든기예의 종법으로 삼았으며 "곤은 소림을 종이라 하고 소림의 설법은 정종유(소림곤법천종의 저자입니다.)의 천종보다 상세한 것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소림곤법천종의 내용을 담았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요즘에는 흔히 중국은 창, 우리나라는 활, 일본은 칼 이라고 널리 퍼져있는데요. 임진왜란을 겪은 후의 조선에서는 조총에 호되게 당하기는 한 모양입니다.
일본의 조총을 명시한 것을 보니 말이죠.

이제 그 다음 내용은 실제로 곤봉을 연습하는 그림과 설명입니다.
이 곤봉보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두사람이 대련하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그 때문에 총보와 총도가 다른 기예와는 표현이 다르게 되어있습니다.
(나중에 스캔하던지.. 그림을 따로 올리도록하죠 ㅡㅜ)

어떻게 다른가하면...
곤봉보는 약속대련의 형태인 만큼.. 같은 동작을 반복하여 시행합니다.
그래서 곤봉총보는 반복을 끊어서 하나의 작은 총보처럼 새로운 줄에 써넣었습니다.
그림을 싣는 총도의 경우에는 반복되는 동작은 모두 제거하고 동작이 다른 14가지 경우의 그림만을 표현하였습니다.(글로 쓰니 역시 설명이 안되는 군요.. 빠른 시일내에 원 그림을 올리도록하겠습니다.)





드디어 곤봉총도와 총보의 그림을 올렸습니다..(늦어서 죄송;;;)
여타 기예의 경우와 총도와 총보가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으시면
2008/09/09 - [무예/십팔기] - 조선시대 무예교본의 완성판, 무예도보통지
위의 글을 보시면 본국검의 총도와 총보가 나와있습니다. 그것과 비교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2008/06/04 - [무예/십팔기] - 십팔기-곤봉(장봉) 영상 
위의 글은 곤봉 영상인데요.
이 영상은 대한십팔기협회, 십팔기보존회에서 연습하는 곤봉보입니다.
무예도보통지와는 달리 개인이 연습하는 투로의 형태도 되어있습니다.
물론 무예도보통지의 원보대로도 수련하기도 하지만...
무예도보통지 원보의 곤봉보는 그 내용이 적기도 하고 기본적인 수들이라... 심심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

여튼 이것으로 일단 곤봉편입니다.^^

앞으로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십팔기의 종목들을 하나씩 소개하고자 합니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총 24가지 항목이 있지만 마상쌍검은 쌍검과 함께 설명할 생각이고
종목에 따라 내용이 적은 것은 한번에 설명하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24번 글을 쓰진 않을 것 같군요 ㅎㅎ
또한 제 개인사정상 정기적으로 쓰진 못 할 것 같네요(일단 내용에 대해 공부를 하고 써야 하니... ㅡㅡ;;)
앞으로 쓸 글들은 "박청정주해, <무예도보통지주해>, 동문선" 을 주로 참조할 것입니다.
여튼 그 첫번째 순서로 권법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순서라면 권법은 권4에나 나옵니다.
무예도보통지는 무예의 성격에 따라 순서를 나누었기 때문인데요.
찌르는 무기(刺), 찍어베는 무기(), 치는 무기(擊)의 순서에 따라 편찬했고
권법은 치는 무예로 분류되어 치는 무예의 첫번째로 나옵니다.

하지만 권법은 무예의 기본이고, 또한 아무래도 다른 병장기를 익히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이기에 가장 먼저 소개하고자 합니다.

무예도보통지는 전에 무예도보통지에 대해 설명한 글에서 말한 것 처럼
척계광의 <기효신서>와 모원의의 <무비지>를 주로 참조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무예도보통지에서도 그 두 책에서 몇마디 인용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척계광은 <기효신서>에서
"권법은 전쟁의 기예와는 관련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수족을 활발히 움직이게 하고 지체를 부지런히 하니 처음 배우는 자들이 무예에 들어가는 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모원의는 <무비지>에서
"점획을 분별하여 알고 난 이후에 팔법을 가르칠 수 있고, 안장에 의거하여 지내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 말 타고 달리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권법도 이와 같다고 말하겠다"고 하여 두 책에서 모두 권법은 무예를 하는데에 있어서 기본이 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면 권법은 전쟁에서 바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척계광의 이 말을 모원의도 그대로 인용하였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이런 말들을 서두에 쓰고 있는 것은 권법이 전쟁에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잊지말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는 무예라고 하면 권법은 기본이고 병장기를 꼭 익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권법"이란 무엇인가 논설을 하고 있습니다.
옛 서적에서 권拳이라는 글자가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그리고 권법이라는 뜻으로 쓰인 글자가 무엇이 있었는지 말해주는데요.
<좌전>에 "진나라 군주가 꿈에서 초나라 군주와 치고 받았다(博)" 하여 박이라는 글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때 박博이 곧 권박拳搏이다.
또한 어느 책에서는 변卞이라고도 쓴다. 뭐 이런 식인거죠.
곧 수박이란 권법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당송이래 권법의 역사에 대해 서술합니다.
권법의 기술에는 외가와 내가가 있는데 외가는 소림이 유명하고 내가는 무당의 장송계가 정통이다. 뭐 이런 내용이죠.
이 내용은 "조민욱 저, <칼끝에 천하를 춤추게하다>, 황금가지" 에 보면 내가권 편이 있는데요. 더 살을 붙여서 재미나게 적어놓으셨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외가계열인 소림보다는 내가 쪽을 좀 더 처주는 것 같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좀 인용하면
"내가의 술이 상대를 칠 때에는 반드시 그 혈을 치는데 혈에는 훈혈, 아혈, 사혈이 있으며 그 혈에 상응하여서 경중으로 치면 혹 죽기도 하고 혹은 기절하기도 하며 혹은 벙어리가 되기도 하는데 호발만큼도 어긋남이 없다"
혈을 치면 벙어리가 되기도 한다라...마치 무협지의 내용을 보는 것 같지 않나요?

이 다음에는 내가권의 수련법 중 근본이 되는 육로권과 십단금의 가결을 적고 뒤에 그에 대해 해설을 자세히 적고 있습니다.
이 가결이라는 것도 무협지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가결은 歌訣인데 즉 노래로된 비결이라고 보면 됩니다.
어떠한 동작에 대한 힌트들을 노래로 하여 기억하기 쉽고 동작연습에 도움이 되도록 한 것이죠.
무협지에서는 이 가결을 얻기 위해 피바람이 일어나기도 하죠. ㅎㅎ
무예를 전달함에 있어서 책이나 이런 도구의 도움이 없었을 때, 이런 방법을 이용했던 것이죠.
우리도 영어단어 외울때 말을 하면서 하면 더 잘외워지지 않습니까? 같은 이치인 것 같습니다. ^^

그 다음에는 무예도보통지에 기록한 도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요.
과거에는(즉 척계광의 책과 모원의의 책에는) 두사람이 마주보고 세를 취하고 있어 공격과 방어의 의미를 더하고 있었는데, 지금은(무예도보통지에는) 투로의 형태로 연결되어 있어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하고 마지막에 서로 얽혀서 씨름하는 것은 거의 유희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행해진지 오래되어 구보로 남겨두었다고 말하고, 그 중 소실된 10가지 세를 증보하여 결을 더하여 기록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잃어버린 10세라는 것은 이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은 흔히 말하는 송태조장권32세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예제보번역속집에서 2가지 세를 제외한 나머지 세를 이미 얻었었지만 무예도보통지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즉 권법보가 변형되면서 10가지가 사라졌기에 다시 가결의 형태로 적어놓았다는 것입니다.

기효신서에도 무예도보통지의 증10세는 빠진 22세만 나와있습니다. 무비지에서는 32세가 모두 나타나고 있고요.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은 22세와 + 오화전신세, 그리고 증10세 하여 엄밀하게 총 33세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기효신서와 무비지는 한페이지에 두사람이 마주보고 세를 취하고 있는 그림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는 세를 연결해놓은 투로의 형태로 그려져 있으며 마지막에는 두사람이 서로 씨름을 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은 현대에 와서는 몇몇 단체에서 행하고 있습니다만,
그 동작에 대한 해석차이로 인하여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해석 중 어느 것이 맞는 지는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2008/06/05 - [무예/십팔기] - 십팔기 중 권법 영상 
다음의 영상은 십팔기보존회 회원의 권법 시연영상입니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위에서 말씀드렸다 시피 혼자서 연습하다가 두명이 대련하는 형태로 나와있지만 그 것을 잃어버린 10세를 더하여 혼자 연습하는 투로로 변형한 것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저자들은 투로로 변형되면서 그 공격과 방어의 의미를 많이 상실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투로의 형태로 연습을 하는 것은 대련에 비하면 공격과 방어의 의미가 작을 수 있습니다. 대련을 하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무예의 동작에는 어떠한 것이나 공격과 방어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법입니다.
십팔기든 아니든 어떠한 무예를 수련하시는 분이라도 투로를 연습할 때는 한동작한동작 그 의미를 되새겨가며 연습하시길 바랍니다.^^(물론 저부터 연습열심히 하겠습니다..;;;;;ㅎㅎ)

무예도보통지는 조선 22대왕인 정조대에 편찬된 무예서로
조선시대 무예교본의 완성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은 임진왜란이후 약200년에 걸쳐서 무예서를 4권 간행하였습니다.
그 중 마지막이 바로 이 무예도보통지입니다.

무예도보통지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무예'를 '그림'으로 '계통을 밝혀' 서술한 책인 것입니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앞서 쓴 글인
2008/09/04 - [무예/십팔기] - 아직도 십팔기를 중국무술이라 알고 계신가요? - 십팔기란
에서 말씀 드린 바처럼 총 24가지 항목과 관복도설, 그리고 고이표가 4권에 나뉘어 수록되어있고, 각각의 무예에 대한 내용은 한글로 된 언해본 1권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아, 그리고 앞서 쓴글에서 빠뜨린 것 중에 병기총서와 기예질의 그리고 척계광과 모원의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병기총서는 무예도보통지를 만들기 이전 조선의 군에 관련된 사실들을 정리한 것이며
 기예질의는 애초에 임진왜란때 무예제보를 만들때에 담당자였던 한교가 명나라 장수에게 무예에 대해서 질문한 내용과 그 답을 적어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척계광과 모원의는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때 참고했던 여러 서적 중 가장 주되게 참고한 기효신서와 무비지의 저자인데 그들의 약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무예도보통지의 내용 중 본국검의 일부를 통해서 무예도보통지의 구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무예도보통지는 각 종목의 무기의 형태를 금식(조선의 지금의 형태), 화식(명나라의 형태) 왜식(일본의 형태)로 나누어 보여주고, 그 무기를 만드는 법부터 시작하여 각 기예의 내력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 뒤에 기예의 동작을 설명합니다.



위의 그림은 본국검보의 한 페이지로
"좌회 향전 작 장교분수세 우수우각 일타
잉작 백원출동세 거우수우각"
이라고 써놓고 밑에 각각의 세에 해당하는 그림을 그려놓았습니다.



위의 그림은 앞서 동작을 하나하나 그려놓았던 것을 그 세명을 이어서 보여주는 총보입니다. 이처럼 본국검이라는 하나의 투로는 여러가지 세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죠

보시면 글자의 방향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는 동작의 진행방향을 표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의 꼼꼼함을 알 수 있죠.




위에 나오는 것은 아까 보았던 총보를 그림과 함께 보여준 것으로 총도라고 합니다.
이 총도는 무예도보통지 이전에는 없던 것으로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면서 새롭게 창안된 것입니다.

세의 이름만으로 되어 있던 것을 그림과 곁들여 설명함으로써 글을 모르는 사람도 보기 쉬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글을 아는 사람도 더 보기 편했겠죠?

그리고 총보나 총도에서 보면 선들이 보입니다. 이 선들은 중간중간 원을 그리고 있는데요. 해당하는 동작에서 회전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동영상과 사진을 이용하여 무술교본을 만듭니다.
그러한 기술이 없었던 과거에는 이처럼 그림을 통하여 만들었고, 정확한 전달의 위해서 여러가지 표현을 고안하였습니다.

사실 요즘 시중에 나와있는 무술교본들과 비교하여도 꽤 훌륭하지 않나요?

이 블로그의 주된 주제 중 하나인 십팔기
그러나.. 블로그를 만든지 100일이나 지났으나.. 십팔기에 대해서 설명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십팔기라고 말하면 중국무술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중국의 십팔반무기 혹은 십팔반병기로 생각하는 사람을 많이 만납니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의 전통무예인 십팔기를 좀 알려보고자 블로그를 만든 것인데..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를 빼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십팔기는 "임진왜란기 부터 정조대왕대까지 약200년간 조선에서 정립한 무예"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십팔기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명에 따라 1598년에 편찬된
<무예제보>에서부터 임진왜란이 끝난 후 1601년에 <무예제보번역속집>
그 후 영조35년에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면서 편찬했던 <무예신보>(1735)
그리고 정조14년인 1790년 <무예도보통지>에 이르는 약200년간 조선에서
한 중 일의 삼국의 무예를 모아서 정리한 전통무예인 것입니다.

그 무예도보통지의 내용을 보면 순서대로

권1에 장창, 죽장창, 기창(旗槍), 당파, 기창(騎槍), 낭선

권2에 쌍수도, 예도, 왜검(교전)

권3에 제독검, 본국검, 쌍검, 마상쌍검, 월도, 마상월도, 협도, 등패

권4에 권법, 곤봉, 편곤, 마상편곤, 격구, 마상재

그리고 부록으로 관복에 대한 설명인 관복도설과 각군영별 기예의 차이점을 적어놓은 고이표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무예도보통지의 무예이름은 십팔기라고 하였는데 책에 수록된 기예는 왜검교전을 따로 세어서 24가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십팔기인가? 십팔기라는 명칭은 앞서 말했던 사도세자의 명에 의해 편찬된 <무예신보>의 단계에서 정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정조대왕은 그 내용에 마상기예들과 격구 마상재를 더 넣어서 책으로 간행한 것이죠. 이름은 그대로 두고요.
이 십팔기의 명칭은 정조의 생부인 사도세자가 명칭을 지은 것이라고 정조14년(1790)에 편찬된 <무예도보통지>의 서문에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서문의 내용은 해석에 따라 조선후기의 공식무예의 명칭이 십팔기였는가, 아니면 이십사기였는가가 명확치 않았습니다.



그에 대한 내용은 위의 논문을 참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튼 위의 논문에 따라 조선후기 공식무예의 명칭은 십팔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십팔기가 역사의 위기속에서 어느샌가 우리의 기억속에 중국무술로 기억되어 있었습니다. 흔히 쿵후십팔기라고 알고 계시지요.
주변 사람들에게 십팔기를 배운다고 말했을때
제 또래인 대학생들은 그게 뭔지 모르거나.. 아니면 대충 중국의 십팔반무예인가보다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른들의 경우에는 쿵후십팔기라고 예전에 다들 중국무술로 알고 있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경우를 종종 보곤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예전에는 쿵후십팔기라고 중국무술이라 알고계셨지만.. 요즘 보니까 그게 한국꺼라 들었다고 말씀하신 분이 있어서 감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십팔기를 중국무술로 오해하게 되었을까요?
그 원인 중 가장 큰 한가지는 바로 십팔반병기, 십팔반무예라고 하는 중국의 말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십팔반병기라고 하는 말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무예십팔번이라고 하여 각기 다른 내용으로 존재하였습니다. 게다가 중국과 일본의 십팔반은 시기에 따라 그 내용이 계속 변화하였으며, 단지 무예의 총칭으로써 사용된 어휘였습니다. 어떠한 특정한 무예나 기술체계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의 십팔반은
활(弓), 쇠뇌(弩), 창(槍), 칼(刀), 검(劍), 모(矛), 방패(盾), 도끼(斧), 월(鉞), 극(戟), 편(鞭), 간(簡), 고(槁), 수(
殳),
차(叉), 파두(把斗), 면승투색(綿繩套索), 백타(百打) (中國大百科全書』「體育」편) 
일본의 십팔반은
마술(馬術), 궁술(弓術), 창술(槍術), 검술(劍術), 단도술(短刀術), 발도술(拔刀術), 치도술(刀術), 포술(砲術), 수리검술, 수영술(水泳術), 유술(柔術), 십수술, 쇄겸술, 포수술(捕手術), 봉술, 함침술(含針術), 모지리술, 인술(忍術) (『무기와 방어구 :  일본편』 )

이라고 합니다. 그 내용에 차이가 있음을 알수 있죠?

또 한가지 원인은 한국에 무예도장이 형성될 당시 쿵푸의 유행을 들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최초의 십팔기도장에서도 쿵푸라는 이름을 달 필요가 있었다고 하니까요.

그에 대해서는 인터넷신문 데일리안의 칼럼인 신성대의 무예이야기 9번과 11번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보러가기-> (9) ,(11) )

또한 그 외에 현재 십팔기보존회, 십팔기협회의 무예는 중국무술이다라는 논란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오해는 아무래도 초기 십팔기협회에 쿵푸도장이 속해있었던 것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게다가 당시 십팔기협회의 단증의 뒷면 영문에는 kungfu sibpalki 라고 적혀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마샬아트라는 용어보다 쿵푸라는 영문용어가 더 널리알려져있고 친숙했다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제가 쓴 글 중에도
2008/06/05 - [무예/십팔기] - 대한십팔기협회와 대한쿵푸협회란 글을 보면
십팔기협회와 쿵푸협회는 단증발급을 위해서 함께 공존했던 관계이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포함하는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여튼 십팔기는 조선후기의 공식무예의 명칭이며, 한국의 전통무예입니다.
절대 중국의 우슈와 혼동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KBS에서 지상파방송에서 시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인터넷전용 영상뉴스를 만들었다고 하네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관련글 보기

지난번에 포스팅했던 십팔기를 주제로 해서 8월 9일에 방영되었던 문화와 사람도
온새미를 통해서 무삭제뉴스가 소개되었습니다.
현재 KBS 메인에 떠있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의 전통무예, '십팔기' 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떴군요

원래 뉴스는 3분이었는데 이 영상은 무려 9분12초.
3배나 늘어났군요^^

EBS 다큐프라임 영상무예도보통지 2부 를 보던 중
중국의 먼훼이펑 북경 체육대학 명예교수가 십팔기의 공연영상을 보며
"이것은 척가권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다큐멘터리 화면에서는 먼훼이펑 교수가 어떤 영상을 보고 그 말을 하고 있고
그 영상은 따로 띄워서 보여주고 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 영상이 먼훼이펑 교수가 본 영상이라고 하고)
근데 그 영상은 무예도보통지의 권법 영상이 아니었다.
그 권법은 맹호권이라고 하여,
해범 선생님의 문중에서 하던 권법이다.

그렇다면 먼훼이펑 교수가 틀린 것일까?
한국에서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를 시연하는 것이라 하고 보여주니
척계광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척계광의 기효신서의 권법스타일과 닮아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조선시대 무예제보번역속집 이래 척계광의 권법을 받아들였던 것이 꾸준히 전해져서 해범선생님의 문중에서도 그 영향을 받았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해범선생님께 십팔기를 전했다고 하시는 오공선생님의 영향으로 해범선생님의 무예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해범선생님의 무예가 조선시대이래로 전승된 십팔기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먼훼이펑 교수의 "이것은 척가권입니다."  이라는 말을 듣고
한 가지 생각이 더 들었는데.
이건 척가권입니다.
라는 단정적인 표현. 이것은 무예도보통지의 무예가 결국 중국의 기효신서를
옮긴것이고 중국의 무예라고 하는 생각이
먼훼이펑교수의 기저에 깔린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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