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대의 무예이야기<18>
식민무예와 주체무예


위에 링크되어 있는 글에 대한 제 의견입니다.

------------------------------------------------

위의 글에서는
무예뿐만 아니라 문화에 있어서 주체성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특히 장기와 국궁을 예로써 문화에 있어서 주체성 유무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적절한 설명이긴 하지만 그냥 듣기엔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장기가 있었기에 서양의 장기 즉, 체스가 우리에게 전해졌을 때 우리는
그것이 서양의 '장기'로구나하고 인식하고 그것을 분류할 수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국궁이 미약하나마 실체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서양의 활쏘기가 전해졌을 때
양궁이라고 이름지을 수 있었다. 비록 현재 양궁이 국궁보다 더 알려져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축구, 농구가 서양에서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다르다. 그것이 주체성의 유무이다.
글 속에서 영국인들은 활을 쏘면서 로빈훗을 상상할 것이라 말하였다.
이는 다소 과장된 말일 수 있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다.
양궁을 배운 사람이 어디선가 양궁을 본다면, 외국에 나가서 양궁을 본다면 최소한 스스로가 양궁을 배웠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작은 감정은 나아가 그 나라, 그 나라 문화에 대한 친근한 감정으로 발전할 것이다.
반대로 국궁을 배운 사람들은 주몽과 같은 드라마를 보며, 관심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또 어떤 사람은 어차피 활쏘기가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필자는 대학의 교양체육으로 양궁을 배워보았고, 현재 서울 관악정에서 국궁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양궁과 국궁을 모두 배워본 필자가 보면 그 둘은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난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몇가지 차이도 있지만 쏘는 방식이나 손을 쥐는 법, 힘을 주는 방식등 드러나보이지 않는 면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이런 것이 주체성의 유무가 가져오는 힘일 것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것을 구별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주체성이다.

하지만 위에서 소개한 무예이야기<18>에서 처럼 한국의 무예문화는 그 주체성을 잃었다.
태권도가 현재 그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태권도가 무예보단 근대 스포츠를 닮아 있기 때문이 그 원인일지도 모른다.

여튼 이런 무예에 있어서의 주체성 부족은 무예계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주체성이 있으면 비슷하지만 다른 것을 구별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무예에 있어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뒤 늦게 한국의 무예를 찾고자 하였고, 그 결과 나타난 것이 중국의 무예, 일본의 무예와는 다른 것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전통무예라는 미명하에 나타나는 정말 독특한 무예들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무예가 아니었다. 무예 문화의 주체성이 없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들이리라. 주체성이 있을 때에만 비슷한 속에서도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체성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것만을 알 수 있었고, 비슷한 것은 중국의 무예나 일본의 무예와 차이를 찾기도 전에 다른 나라의 무예로 치부되어버렸다.

십팔기의 경우 쿵푸의 하나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십팔기를 익히고 있는 필자가 보아도 십팔기와 우슈의 일부는 비슷하다. 하지만 다르다.
아직은 필자의 언변이 부족하거니와 수련도 부족하여 명확하게 그 차이를 설명하긴 어렵다.
 하지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십팔기는 어떤 나라의 무예와 비교해도 비슷하지만 다르다.

원문보기
'태권도와 택견은 무예가 아니다' 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신성대의 무예이야기라는 연재글의 제목입니다.

글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태권도는 '전통' 무예가 아니며, 택견은 전통'무예'가 아닌 전통'놀이'이다."
라는 것이다. 물론 태권도의 무예성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일단 위의 글에서는 태권도에 대해선 전통의 문제를 논하고 있고, 택견에 대해서는 무예성을 논하고 있다.

사실 이 글을 읽기 전엔 태권도가 가라테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주변 친구들에게 그 사실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심지어 국사를 전공하는 학생도.

태권도가 우리나라의 국기로서 자리잡고 있고 있는 것에 대해서 큰 불만은 없다.
다만 무예를 하는 사람이라면 무인답게 자신들의 콤플렉스인 전통성에 대해서 인정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역사를 소급해서 삼국시대의 벽화에 기대는 것은 무인으로서 비겁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따지면 우리가 움직이는 모든 활동은 고대의 수렵활동에 기반한 것이 되버릴텐데..

태권도는 전통무예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기가 되면서 새롭게 전통을 형성해 나가면 될 것이다. 다만 국기로서 남을 것인가 올림픽 종목으로 즉, 스포츠로 남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발전방향을 새로 모색하거나, 이원화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한다.

택견의 경우는 무예가 아닌 놀이라고 한다.
이 의견을 보고 글을 읽기 전까진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실들이 떠올랐다.

우리는 복싱이나 레슬링 혹은 K-1과 같은 것을 보고 무예라고 말하진 않는다.
K-1은 이종격투기이니 제외 하더라도, 복싱과 레슬링과 같이 경기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을 무예라고 말하진 않는다.
격투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격투기와 무예는 여러면에서 비슷하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그 구분이 모호해진 것 같다.
격투기에서 무예와 비슷한 기술체계가 있고, 공격과 방어라는 기본 의식으로 움직임이 결정된다.
목적에서는 차이가 날 것이다. 격투기는 단순히 승패를 가르는 것이며, 무예는 생명이 걸린 문제이다. 하지만 현대의 입장에서는 그 차이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격투기와 무예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것저것 여러가지 생각이 들지만 필자 역시 그 생각들이 정리가 되지 않아 쓰지 않는다.

여튼, 그런 의미에서 필자도 택견은 무예이기 보단 격투기, 즉 단순한 투기 종목이라 하겠다. 같은 논리로 씨름 역시 마찬가지로 전통놀이가 되겠다.
아, 그러고 보니 씨름은 민속놀이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