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남한시재 상반기 공연은 7월 8일까지로 기획되었으나,

 

조금 일찍 이번주 7월 1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상반기 공연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하반기 공연은 8월 26일 일요일에 다시 시작됩니다.

 

날씨가 더워서 조금 힘들겠지만

 

상반기 마지막 공연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공연 장소와 시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한산성 행궁 내의 외행전 앞에서

 

오후 2시에 시작되어 대략 45분정도 공연이 펼쳐집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아래의 영상은 장창 연무와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교전 영상입니다. 직접와서 보시면 더욱 실감나도 박진감이 넘친답니다^^

 

 

 

 

일전에 소개해 드린 십팔기보존회의 남한산성 공연 실황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지난 2년간 수어장대 - 남문주차장 무대를 거쳐서

 

 

올해에는 복원된 남한산성 행궁 안에서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남한산성에 파견된 어사가 남한산성을 지키는 수어청 무사들을 평가하는

"남한시재" 라는 컨셉으로 공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하 사진을 통해서

공연의 내용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남한산성에 행차한 어사를 환영하기 위한 화관무가 공연의 첫머리를 열고 있습니다.

 

 

 

사진을 멀리서 찍어서 잘 안보이지만

깃발들 사이로 어사님이 보입니다.

 

 

당파를 든 무사가 평가를 보기위해 나가 있습니다.

 

 

무사들이 월도를 연무 중입니다.

 

무예도보통지에만 있는 조선의 독창적인 무예 기창입니다.

 

 

시재의 중간에 남한산성의 무희들이 검무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양에 까지 남한산성 무희의 검무가 빼어나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합니다.^^

 

 

사진에서 왼손에 든 칼이 잘 안보입니다만

양손에 칼을 들고 펼치는 쌍검 연무를 시작하려는 모습입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교전에 앞서 둑기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 교전

월도와 창이 겨루고 있습니다.

월도와 창 이외에도 쌍검과 창, 등패와 창, 창과 검 등 다양한 종목이 펼쳐집니다.

최종 승자에게는 국왕이 하사한 월도가 주어집니다.

 

상반기 "남한시재" 공연은 7/8일까지 매주 일요일 2시에 남한산성 행궁안에서 펼쳐집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지난 2010년 부터 십팔기 보존회가 남한산성에서 전통무예 십팔기 공연을 해왔는데요.

올해 공연이 드디어 시작됩니다.
첫 공연은 바로 내일 5/27 오후2시입니다.
특히 올해는 남한산성의 행궁이 복원되어 그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한산성 행궁의 입구에 한남루가 있는데 바로 그 앞에서 공연이 이루어집니다.
7/8까지 매주 일요일 1차례 공연을 하고요. 혹서기에 잠시 쉬었다가 8/26 다시 시작하여 10/28까지 공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산성에 올라 무예를 시험하다 "남한시재" 로서 남한산성의 군사들이 수어사에게 무예를 평가 받고 대결을 통해 장원을 뽑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공연 정보는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공연명 : 남한시재
장소 : 남한산성행궁 한남루 앞
일시 : 5/27-7/8, 8/26-10/28 매주 일요일 오후2시

많이들 오셔서 조선시대 무인의 기상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에 남한산성 행궁이 복원됨에 따라 남한산성 문화관광사업단에서 의욕적으로 문화공연, 전시,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남한산성 문화관광사업단 홈페이지( http://www.ggnhss.or.kr/culture/asset1.asp)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다른 곳에서 있었던 공연이 끝난후 전통 복장을 체험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십팔기 보존회의 공연에 오시면 직접 옛 무인들의 옷을 입어보실 수 있습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논문이 나온지는 조금 되었습니다만

소식을 전하는게 늦었습니다.

그간 블로그도 너무 오래 방치해두었네요 ㅎㅎ

요즈음엔 박사과정을 진행중입니다.

일년 쉬었다가 수업을 들으려니 어색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여하튼, 석사논문의 제목은

"임진왜란 전후 조선의 전술 변화와 군사훈련의 전문화" 입니다.

아래는 논문 내용의 요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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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군제는 건국 초 정도전이 《陣法》을 편찬한 이래로 《陣圖之法》(1421), 《癸丑陣說》(1433), 《五衛陣法》(1451)과 같은 일련의 병서를 편찬하여 그 내용을 바탕으로 정비되었다. 이를 통해서 병종, 병력동원, 지휘체계, 무기 등 軍事(military affair) 전반의 체계가 《오위진법》을 기반으로 한 오위체제로 일원화되었다. 오위체제 하의 군인은 뛰어난 신체능력에 기반을 둔 무예 기량을 가진 戰士로 구성되었으며, 그에 따른 훈련체계가 갖추어져 있었다.

조선 초기 군사훈련의 목적은 통일된 지휘체제의 확립이었다. 이를 위해 講武를 위주로 한 집단훈련이 주로 시행되었다. 그런데 강무에서 주된 공격은 기병들의 궁시 사격으로 이루어졌고, 기병의 사격능력은 훈련으로 향상시키기보다는 군사 개개인의 기량에 의존하였다. 세종대 이후 전국적인 군역제도가 확립됨에 따라 의무군역인 정병이 대거 군사로 편입되었다. 때문에 이전과 같은 훈련방식으로는 군대의 기량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비교적 전투능력이 떨어지는 구성원을 대상으로 집단적인 움직임을 통해 전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군사훈련의 형태는 진법을 통한 모의전투형식인 閱武로 변화해 나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선전기의 전술체계는 기병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이러한 전술체계에서는 정예기병의 확보가 가장 중요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은 임진왜란을 맞이하였고, 조선전기 이후 오위체제로 유지되었던 조선의 군사제도는 임진왜란이라는 유래 없는 대규모의 전쟁을 겪으면서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특히 전투를 수행하는 구성원의 질적인 변화가 크게 일어났는데, 이를 가능하게 해준 것은 個人火器의 등장이었다. 임진왜란은 전장에 개인화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전쟁이었다. 개인화기의 등장은 살상능력이 더 이상 개인의 신체적인 능력과 관련되지 않고 훈련과 전문기술에 의해서 결정되게 한다는 의의가 있다. 새로운 무기는 군대의 동질화를 초래하였고, 이는 전쟁의 규모를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아시아의 전장에서도 개인화기의 등장은 전쟁규모를 확대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명이나 일본의 경우 개인화기가 도입되면서 전투 비전문계층이 대거 군인으로 전투에 참가하였다. 이에 따라 보병의 전술적가치가 증가하고, 전쟁이 대규모화되었다. 임진왜란을 통해 전쟁양상의 변화를 경험한 조선은 새로운 전술과 이를 뒷받침할 훈련체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시도하였던 것은 명나라의 병서인 《紀效新書》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기효신서》의 내용을 조선의 실정에 맞게 적용하면서 조선은 기존의 오위체제에 따라 체계화되어 있던 전술, 훈련, 편제 등의 軍事 전반을 새롭게 정립하였다.

《기효신서》에서는 개인기량이 뛰어난 군사보다는 담력이 있고 성실한 일반민들을 군사로 활용하도록 하였다. 각각의 군사를 역할에 맞게 나누어 선별하여 배치하였고, 한 가지 기예를 꾸준히 훈련시켰다. 또한 엄격한 군율과 연좌법을 적용하여 기율을 엄하게 유지하였다. 《기효신서》의 내용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요구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조선에서는 《기효신서》의 제도를 의욕적으로 수용하였다. 새로운 전술이 도입되자 이에 맞는 훈련을 수용하였고, 전술과 병학의 이해가 심화되면서 《기효신서》의 내용을 분류하고 정리하여 훈련의 체계를 만들어나갔다. 그 결과 중앙군은 훈련도감, 지방은 속오군으로 명명되고 砲手, 射手, 殺手의 三手兵으로 편성되었다. 단순히 《기효신서》의 훈련내용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더욱 구체화하고 전문화하였다. 이를 통해 군사훈련은 습진이라는 형식으로 수행되었다.

《기효신서》를 통해 정립된 조선의 전술은 북방의 女眞 기병이라는 새로운 적이 등장함에 따라 변화가 필요하였다. 광해군 초기에는 《練兵實記》의 전술을 수용하여 車騎步전술을 적용하여 기병의 양성을 꾀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기병양성은 조선전기와 같은 기병위주의 전술로 회귀한 것은 아니었다. 광해군대의 보완된 전술은 보병중심으로 고도로 조직화된 상태를 유지하였고, 기병 또한 이전과는 달리 조직화되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광해군 11년(1619) 深河전투에서 패배함에 따라 여진의 기병을 상대하기 위한 전술 보완이 조선의 향후 과제가 되었다.

임진왜란기 화약무기가 전장에 보급되고 군대의 대규모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전술은 고도로 조직적으로 변화하였다. 조직적인 전술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전문화된 군사훈련이 필요하였으며 그 결과 전문적인 군인에 의한 지속적인 군사훈련이 군사력 건설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이에 따라 군대를 조직하고 군사력을 건설하는 일이 과거 다른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 개별 병종별로 특화된 훈련이 요구되었고, 개별 훈련이후에 집단훈련을 받아야만 군사로서 기능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군사훈련을 위한 비용을 국가에서 담당해야 했다. 즉, 군사훈련의 전문화로 인해 군사력을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서양의 상비군 형성과는 차이가 있지만, 조선에서 군사 훈련을 국가적으로 관리하게 된 것은 조선적인 상비군 체제가 성립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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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으나..
제가 게을러서 많은 소식들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오랜만에 남한산성 공연소식을 전하고자 포스팅합니다.

올해부터는 남한산성 수어장대가 아닌 남문주차장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는 소식은
일전에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수어청 연무의식은 새로 부임한 수어사가 수어청의 군사들을 시험하는
컨셉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수어장대에서 공연을 할 때에는 이런 공연형식만으로도 배경과 어울려 좋은 효과를 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남문주차장 무대에서 공연하면서 단지 연무의식의 공연형식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고
요즈음 다양한 참여형 공연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공연에서는 관람객들과 함께 무예기공 체험, 그리고  편곤체험을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밑의 사진들은 무예기공체험 장면입니다.

제가 무대 위에서 시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
뒤에 보시면 많은 분들이 따라하고 있고요 ㅎ

등산하러 오신분들이라 그런지 무예기공 참여도가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높았습니다.

객석 쪽에서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올해 남한산성 수어청 연무의식은
10/16, 10/23
2회 남아있습니다.
오후 3:30 에 공연이 시작되며 무예체험 포함하여 약 1시간정도 진행됩니다.

아직 못 보신분들은 남아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게다가 이즈음 되면 남한산성에 단풍도 멋지게 들것 같으니 1석2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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