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12월 20일에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동지를 맞이하여 행사가 있었습니다.

제목에서 보이시는 것과 같이
2008 궁중문화와 함께하는 작은 설 동지
라는 주제로 하여 여러가지 공연을 하였는데요.
십팔기 공연도 함께하였습니다.
오후 2시 공연이었습니다만
겨울이라 매우 추운 날씨였습니다.

다음은 십팔기보존회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공연 사진입니다.
더 많은 사진을 보시려면 -> (클릭)


위의 사진은 쌍수도의 모습입니다.
무대가 좁아서 2명만이 공연하였습니다.
사진으로 보아서는 칼의 길이가 별로 안길어 보이는데요.
실제로는 칼날의 길이만 1미터가 넘는 엄청난 길이입니다^^


이 사진은 등패의 모습입니다.
등패는 등나무로 만든 방패로 가볍지만 질깁니다.
칼은 일반적인 요도를 사용하고요.


장창의 모습입니다.


시연을 마치고 모든 시연자와 사회자 그리고 보존회장님이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나중에 영상이 정리되면 영상도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무예는 제독검입니다.
제독검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 제독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습니다.

이여송은 다들 아시는 것처럼 임진왜란 당시 원군으로 왔던 장수입니다.
또한 이여송의 선조가 조선 출신으로 유명하죠.
이여송은 철령위사람이었다고 하네요.
이 철령위는 또한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이죠.

고려시대에 명이 철령이북의 땅을 영토로 주장하려하자
고려에서 출병을 하였다가 위화도 회군으로 결국 조선이 건국되게 되는
이 대목에서 나오는 철령이북의 땅이 바로 철령위를 말하는 것이죠.

여튼 이렇게 이여송은 조선과 나름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제독검은 이여송의 검법이었다거나 이여송이 직접 전수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이여송 제독 휘하의 장수인 낙상지라는 장수를 통해 배운 검법입니다.
더 명확히 말하면
임진왜란기에 유성룡은 군사들을 낙상지에게 보내서 훈련받게 하였습니다.
이에 낙상지는 휘하의 10명을 교사로 삼아서 그들에게 창, 검, 낭선 등을 연습시켰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유성룡의 "징비록"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하는 군요.
무예도보통지의 저자들은 이런 내용을 전하고나서
낙상지가 이여송 제독의 표하 이므로 제독검의 명칭은 여기서 나오지 않았겠는가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뭐... 정확한 사실여부와는 관계없이. 당시 사람들은 제독검은 이여송의 검법으로 인식했던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무예도보통지에서는 이여송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이여송이 동방(우리나라를 말하는 거겠죠)에 있을 때 통진 금씨의 딸을 취하여 시희로 삼아서 몸에 지니고 있던 검을 증표로 주면서 떠날 때 말하기를 '아들을 낳으면 천근이라 부르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과연 천근을 낳아서 그 후손이 거제에 많이 거주했다고 합니다.
영조때에는 천근의 현손(고손자)에게서 앞서 말했던 검을 받아서
이여송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칼에 새기고 칼집을 장식하여
무예도보통지를 만들적에는 이여송가에 되돌려 주었다고 합니다. ^^

제독검도 예도와 마찬가지로 요도로 수련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여송이 남기고 갔다고 하는 검은(정확히는 도입니다만)
곧은 형태로 직도였습니다.
또한 그 칼은 이여송가에 돌려주기 전, 즉  200년쯤 후에도 녹슬거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독검은 총 14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음은 그 시범영상입니다.

좀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그간 좀 바빴던 터라;;; 죄송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무예는 쌍수도와 왜검 그리고 교전 입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죠.
바로 왜로부터 기원한 무예라는 것입니다.

물론 차이점도 있습니다.
쌍수도의 경우 왜의 칼을 보고 그것을 모태로 하여 만든 것이고
왜검은 왜에 가서 직접 배워온 것이며
교전은 배워온 왜검을 토대로 창작한 것입니다.
여하튼 이 세가지는 무예도보통지의 무예 중 그 기원을 일본에 두고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럼 우선 쌍수도부터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쌍수도는 여러가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쌍수도란 이름은 양손을 사용한다는 문구에서 비롯된 것이구요.
그 외에 용검, 평검, 장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쌍수도는 본래 장도長刀라는 이름으로 무예제보에 수록되었습니다.
당시 무예제보는 왜군을 상대하기 위한 전법인 절강병법의 원앙진에 필요한 시급한 무예를 수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쌍수도 즉 장도는 원앙진에는 필요 없는 병장기 였으나 무예제보에 수록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조총수에게 쌍수도를 들도록 하여 조총사격후에 근접전을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또한 가왜라고 하여서 군사훈련시 가짜 왜군 역할을 하는 병사들이 쌍수도를 들도록 하였던 것 입니다.

쌍수도는 원래 칼날의 길이가 5척이며 그 중 동호인(날을 보호하는 구리)이 1척 자루가 1척5치로 총 6척 5치의 길이였다고 합니다. 환산하면 총 길이가 거의 2미터 가까운 엄청난 길이죠... 
무예도보통지에 이르길 왜인들은 1丈을 뛰어와서 칼을 휘둘러 병사들을 양단했다고 합니다.
이 기세에 병사들이 눌려서 대적하기 힘들었다고 하고요.
만약 사실이라면 5미터 전방에 있던 적이 한 순간에 가격을 하였던 셈이니 엄청났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때에는 이미 제도가 바뀌어 검법은 쌍수도를 운용하는 검법이었지만 칼은 요도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무겁고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다음은 쌍수도의 총도입니다.
전진한 후에 초퇴방적, 재퇴방적, 삼퇴방적세로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원지로 돌아가라고 적혀있고 다만 그림 표기는 한 번만 하였는데요
이 것은 한 번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반복을 생략한 것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다음은 왜검입니다.
왜검은 같은 이름으로 
무예제보번역속집에 수록되었었지만...
그 내용은 다릅니다.
무예제보번역속집에서는 교전의 형태였죠.
또한 기효신서에서 비롯한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의 왜검은
숙종 당시 김체건이란 군관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서
그 비법을 얻어온 것이었던 겁니다!!! (스파이죠. 지금으로 치자면.. 군사기밀을 빼온 셈이니..)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일본도의 우수함은 세계에 알려져 있었나 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자들도 왜검의 우수함을 인정하며 중국도 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적어놓았습니다.

왜검보에는 4가지 유파의 검술을 적어놓고 있습니다.
그 유파는
토유류, 운광류, 천류류, 유피류 입니다.
김체건이 이 4가지 유파의 검술을 얻어왔으나 이미 산실되어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할 때에는 운광류만 행해졌다고 합니다.
이 4가지 유파의 검술은 일본에도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조선세법은 중국에서 찾아오고... 왜검은 조선에 있고... 참 아이러니 하죠;;
이에 대해서 그 유파의 검술이 일본을 대표할 만한 검술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없어진 것이라 설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조금 궁색하기도 합니다.

여튼 이렇게 4가지 유파의 검술이 있기 때문에 왜검편에는 총도가 4개 수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지금부터 이야기할 교전보까지 합치면 5개가 수록되어 있는 거죠.
교전은 앞서 말한 것처럼 왜검을 바탕으로 김체건이 새롭게 창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따로 교전보라고 칭하였으나, 본디 왜검에서 비롯된 것이라서 왜검보의 뒤에 함께 붙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래의 교전보는 양날의 검으로 그려져 있었으나, 지금은 외날인 요도로 하였다고 합니다. 교전을 수련하는 중의 사고를 염려해서라고 하네요.
그래서 교전을 익힐때는 가족으로 몇 자되는 나무를 감아싸서 요도를 대신하여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칼을 목도라고 하였다고 하네요..

쌍수도와 달리 왜검과 교전에는 세명이 없습니다.
교전을 시작할때에 견적출검세가 있긴 하나. 그 뜻을 풀이해보면 알 수 있듯이(적을 보고 검을 뽑는..) 그리 의미 있는 동작은 아니죠..
대부분의 설명이 우수우각 혹은 우수좌각 등 손과 발의 좌우를 통해서 동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왜검과 교전의 총도에는 세명 없이 그림만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혹시 그림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면 다른 것들에 비해서 찾기가 더 힘들것 같군요^^;

밑에는 교전보의 그림 중 하나 입니다.

이하는 십팔기보존회의 쌍수도 시연 영상입니다.
2미터는 되지 않지만 실제크기의 쌍수도에 가깝게 재현하여 보았습니다.


이상으로 쌍수도와 왜검, 교전 편을 마칩니다.^^


무예도보통지의 무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본국검이 아닐까 싶습니다.
본국검은 그 명칭에서 부터 한국 고유의 전통무예라는 기운이 팍팍! 풍기기 때문이겠죠.

제가 어렸을 때 다녔던 합기도장의 한켠에 본국검 총도가 걸려있었습니다.
검도를 하는 단체 중에서 본국검을 모르는 단체는 없을 겁니다.
또한 본국검협회라는 사단법인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무예단체들이 전통무예를 표방하면서 본국검의 명칭을 많이 이용했죠.
네이버에서 "본국검의 비교" 라는 키워드로 검색하시면 다양한 단체의 본국검 영상을 한꺼번에 올려놓은 게시물이 검색됩니다.
한번 비교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딴소리는 이만하고 무예도보통지의 본국검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본국검에 또 다른 명칭으로 신검(新劍)이라고 불립니다.
이 본국검은 예도와 같은 요도로써 수련합니다.
본국검의 기원을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자들은 신라의 화랑이었던 황창랑에서 찾습니다.
나이가 7세였던 황창랑이 저자에서 검무를 추어 유명해지고
백제왕에게 불려가 검무를 추게 되었는데, 이 기회를 틈타 백제왕을 찔러 죽이고 백제인에게 죽었다는 <여지승람>의 고사를 인용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검무 중에 황창랑과 관련된 검무가 아직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러한 이유로 신검이라는 별칭이 신라검의 신검이 아닌가? 하는 주장도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조선세법 24세를 통해서 새롭게 만든 것이기 때문에 신검이라고 하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앞서 2008/11/24 - [무예/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7) - 예도
에서 무비지에서 검법을 조선에서 얻어왔다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고 소개했었습니다.
본국검의 설명에서도 그 이야기가 반복되어서 나옵니다.

"본국검의 연기(緣起)를 황창랑으로 인하여 신라로 잡지만, 신라때의 검술인가에 대해서는 고증할 수가 없다." 고 말하며
모원의가 조선에서 검보를 얻었다고 하였으나..
그 창안과 그 저수는 물론하고 모원의의 세대와도 시간이 흘러 상호간에 주고받은 것이 누구인지도 확실히 모른다.
본국의 사람들은 어찌하여 스스로 전수하고 스스로 이습하지 아니하고 꼭 무비지를 기다려서 전습하는 지 모르겠다. 하며 본국검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도와 본국검에 있어서는 조선의 무예에 대한 자존심이 나타나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본국검은 그 이름에서 이미 本國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니까요.
또한 예도와 본국검은 다른 검법에 비하여 세가 많아 투로가 깁니다.
그만큼 어렵기도하구요.

아래는 본국검 총도입니다.
밑의 본국검 영상과 비교하여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장충단(獎忠壇)과 십팔기옛터(十八技舊地)<--인터넷신문 데일리안 칼럼 보러가기

장충단을 아시나요?
장충단은 지금 서울시 중구 장충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장충단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만 대부분 알고 계실 뿐... 장충동 족발만을 다들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이 장충단은 사실 1900년 고종의 명으로 을미사변 때 순국한 장병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제단(祭壇)입니다.
이 정도까지는 알고 계신 분이 많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장충단이 조선의 무혼이 깃든 장소라는 것은 대부분 모르실 겁니다.
가장 위에 링크를 통해 칼럼을 읽어보시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으실 겁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 장충단이 만들어진 곳은 조선전기부터 계속해서 군인들이 훈련하는 터였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당시 이 일대는 남소영, 남별영, 그리고 화약무기고 와 같은 시설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비파정이라고 하는 곳에서는 훈련도감군의 무예수련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무예는 다름아닌 십팔기였겠죠.

그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장충단에 그러한 배경이 있었다고 하니 관심이 가네요.
현재 장충단공원이 혹시 변하게 된다면 조선시대의 무혼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얼마전 아리랑TV의 Korea Now라는 프로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외국인 마르코가 한국의 여러가지 무예를 배워보는 기획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십팔기, 택견, 고무도 등 5가지의 무예를 찾아가서 배우는 데요.
그 첫번째로 방영되었던 것이 십팔기였습니다.
몇일을 와서 배웠지만 실제 방영시간은 10분 정도였습니다.

아래의 영상은 그 방영분입니다.
영상 속에는 전에 소개했던 황학정에서 열린 제2회 활쏘기 백일장에서 십팔기보존회가 시범보이는 장면도 나오네요^^

이번에 소개하는 무예는 등패와 낭선입니다.
낭선으로써 찌르기 종류의 무예는 마지막입니다.
거기에 왜 등패를 같이 소개하는가 하면,
이 등패와 낭선은 진중에서 그 쓰임이 같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등패와 낭선은 여러 병장기로 진형을 이루었을 때
수비를 담당하는 병장기였다는 것입니다.
그럼 등패부터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등패는 등나무를 엮어서 만든 방패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름이 등패인 거죠.
그 모양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오른 쪽의 등패가 중국의 양식이며 가운데 2개가 조선시대의 양식입니다.
그 차이는 등패의 크기입니다.
무예도보통지에서 말하길 "지금의 제도는 등패의 직경이 3척 7치로 앉아서 은신하기에 부족하다. 마땅히 조금 넓혀서 화식처럼 한다." 고 하였습니다. 주척으로 보면 90센티가 조금 안되는 길이네요.
그리고 손잡이부분을 만드는 방식도 다르다고 하네요.

등패는 요도와 함께 쓰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밑의 그림처럼 말이죠.
요도는 허리에 차는 칼이란 뜻으로 요도라는 명칭에는 특별히 규격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
본국검, 쌍검 도 모두 요도라고 말하지만 그 길이와 형태는 각각 차이가 있습니다.
여튼 등패의 요도는 본국검이나 제독검 등에 사용하는 요도보다는 짧으며 쌍검보다는 약간 큰 편입니다. 그리고 휘어져 있는 모양이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의 그림에는 별로 휘어져 보이진 않네요;;;

또한 등패수들은 표창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표창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본 닌자들의 표창은 아닙니다.
이 표는 던져서 살상하는 무기라는 뜻을 가진 글자로서 그러한 무기들을 표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의 선두에 있다가 적이 다가오면 표창을 던지고 바로 요도를 뽑아 들어서 돌격하였다고 하는군요.
중국과 조선에서 사용한 표창은 그야말로 짧은 창의 형태로 처음 그림의 가장 왼쪽과 같았습니다.

이 등패의 기원은 무예도보통지에서 밝혀놓은 것으로 보면 중국의 남만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베트남 쪽이 되는 건가요?
여튼.. 삼국지에 보면 등갑병이 나오죠?
그 등갑병의 등도 또한 등나무의 등자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등패편에는 이 등갑을 만드는 법이 또한 기록되어 있습니다.
<圖說>에 이르길 "적등 50근을 석조(돌로만든통)에 넣고 보름동안 침수시켜 건져내어 3일간 햇볕에 말렸다가 다시 석조에 넣고 물을 더 붓는다. 이와 같이 물이 충분히 스며들도록 한 번 두루 하는데 1년 동안 하여 햇볕에 바짝 말린다. 엮어서 꿰는 법식은 모두 20개로 나누어서 그 곁에는 오동나무 기름을 바르는데 기름을 칠한 그 등갑은 가볍고 견고하여서 능히 화살과 칼날도 막을 수 있다." 라고 기록하고 있네요.
여튼 중국의 기록에서 보면 남방에서 남만이 등패와 표창을 잘 썼다는 기록이 여럿 존재합니다. 그래서 그 기원을 남만이 아니었겠는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등패 총도와 십팔기보존회의 등패 시범 영상입니다.
총도와 비교하면서 보시면 좋은 것 같습니다.

다음은 낭선입니다.
낭선이라는 이름은 정말 생소하실 것 같습니다.
낭선은 대나무의 끝에 날을 달아 사용하는 창으로 그 가지를 9층을 살려서 방어의 기능을 높인 무기입니다. 밑의 그림을 보시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낭선의 길이는 장창과 같아서 1장 5척입니다. 약 3미터가 넘는 길이입니다.
그런데 낭선은 왜 그 가지를 그대로 남겨두었을 까요?
그것은 낭선의 가지의 끝에 날을 달아서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낭선은 척계광이 왜군과 상대할 때에 논에서 전투가 있을때 진의 주변에 철질려나 거마목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낭선을 활용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이 가지끝에 붙어 있는 날에는 독약을 발라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등패편에 보면 등패는 반드시 낭선의 아래에 두어야 한다고 써놓았습니다.
낭선을 통하여 등패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등패는 방패이니 당연히 방어의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것입니다.
낭선 또한 이처럼 등패를 엄폐하여 등패의 방어력을 극대화하고 또한 낭선자체도 크기를 통하여 진형 전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아래의 영상은 EBS 다큐프라임 영상무예도보통지 1부 무의시대 중 한 장면입니다.
조선시대의 병사들이 진을 이루어 일본군과 접전하는 모습을 재현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면 앞에 등패와 낭선이 도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등패와 낭선은 진에 선두에서 방어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등패와 낭선의 비호아래 장창과 같은 공격력이 강한 무기로서 적을 제압하였던 것이죠.

이 동영상에는 앞서 설명했던 장창, 당파 또한 등장합니다. 또한 그 외에도 조총과 활쏘기가 등장하여 조선시대의 전법을 단병과 장병을 통틀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등패, 낭선, 장창(2), 당파> X 2 이런 형태를 원앙진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것은 동영상을 통하여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상 등패와 낭선 편이었습니다.

이거... 남한산성 등산문화축제 공연 하나로
너무 재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만;;;



이 영상은 14분 정도 되는 공연 장면 전체에 해당하는 것 입니다.
제가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연재를 통해서 이미 설명한 기예도 있고
아직 연재하지 못한 여러가지 기예가 나옵니다.

십팔기의 다양한 기예들을 먼저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일전에 이미 EBS에서 제작한 다큐 <영상무예도보통지>에 대해서 알려드린 바가 있습니다.
바로 이거죠 ---->> (2008/07/20 - [무예/십팔기] - EBS 다큐프라임 "영상 무예도보통지" 1부 - 무의 시대 다시보기)

위의 영상은 다큐의 내용 중에 일부를 잘라놓은 것입니다.
다큐멘터리 전체를 다시보고 싶으시면 전에 써놓은 글의 링크를 통해서 이동하시면 됩니다.^^
위의 장면은 십팔기보존회의 시범단장 및 시범단이 수고하여 주셨습니다.
영상의 컨셉은 보시는 것과 같이 십팔기를 익힌 고수 1인과 자객 3인의 결투입니다.
십팔기를 익힌 고수는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할 때 실기를 담당하였던 백동수를 모델로 하였습니다.

월도를 들고 백동수역할로 연기해주신 분이 시범단장님이시며,
창, 왜검, 쌍검을 들고 자객 역할을 하신분들은 십팔기보존회의 시범단원분들입니다.

십팔기보존회에서는 십팔기를 수련하면서 무예도보통지에 나와있는 여러가지 기예를 이용하여, 합을 짜서 겨루는 교전을 연습하고 또한 공연을 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교전은 월도와 창이 겨루는 월도창교전, 그리고 창과 칼이 겨루는 창검교전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것은 기창들 입니다.
기창은 한글로 하면 두가지 모두 기창이지만
깃발이 달린 창인 旗槍과 말을 타고 운용하는 騎槍, 즉 마상창이 있습니다.

둘 모두 창류로서 무예도보통지 권1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권1의 순서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장창 죽장창 기(旗)창 당파 기(騎)창 낭선 입니다.

이 순서를 보면 창과 같은 류를 설명함에 있어서 장창 죽장창 기(旗)창 당파를 설명하고
그 뒤로 기(騎)창 을 설명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다른 마상기예도 마찬가지 인데요.
월도를 설명한 뒤에 마상월도를
쌍검을 설명한 뒤에 마상쌍검을
편곤 다음에 마상편곤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뒤에 말씀을 드리겠지만 다른 기예들과는 달리 마상기예에는 총보와 총도가 없습니다.

이는 마상기예들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독립된 형태가 아닌 각 병기의 운용법의 하나로 파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기(騎)창의 뒤에 낭선을 서술한 것입니다.
낭선은 다른 창류와 달리 낭선은 척계광에 의해서 고안된 병기로 창류와는 그 기원이 다르기에 따로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낭선편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기창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깃발을 단 창인 기창旗槍입니다.
기창은 장창에 비하여 길이가 짧습니다. 자루가 9척 창날이 9치로 되어 있는데요.
이는 주척으로 계산하면 대략 2미터가 조금 넘는 길이입니다.
때문에 이 기창을 단창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본래 기창은 군대의 진중에서 무기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사극을 보면 지휘관이 목소리를 통해서 지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물론 우리나라의 사극에서 처럼 소규모의 전투만을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외국의 영화같은 것에서 보면 북과 같은 소리 그리고 깃발로써 군대를 지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좀 아쉽군요;;; 우리나라도 그런 멋진 전투씬이 만들어지면 좋을텐데요..)
이처럼 기창은 명령을 하달하고 응답하는 전시 군령전달체계로서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왕의 주위에서 의전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구요.

하지만 조선에서는 기왕에 기창에도 날이 달려있음에 그것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하여 보를 만들어서 전하고자 기창의 연습법을 만든 것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 메는 호미와 곰방메도 병기가 된다. 지금은 별도로 하나의 창으로 갖추어서 그 세법을 익힌다."고 하였습니다.
즉, 당시 우리나라에서만 전하는 독창적인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그 세명에서도 특이한 현상이 보입니다.
앞서 "2008/10/10 - [무예/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3) - 장창, 죽장창" 에서 죽장창을 세명을 설명했을 때에
진왕점기와 한신마기라는 세가 나왔었습니다.
하지만 기창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진왕마기와 한신점기라는 세가 보입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이것도 기창이 우리나라에서 만든 독창적인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명칭을 바꾸어서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실 진왕마기 혹은 한신점기에서 동작상 중요한 것은 마기와 점기라고 생각됩니다.
마기의 마자는 磨(갈다)이며, 점기의 점자는 點(점찍다)입니다. 기자는 둘다 旗이구요.
이는 죽장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왕이나 한신은 진나라의 왕, 그리고 한신은 우리가 잘 아는 그 한신을 뜻합니다.
결국 동작상에서는 비슷한 세이지만 표현을 일부러 달리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다음은 기창의 총보의 그림입니다.



다음은 2008.10.5 경기도 광주왕실도자기축제에서 있었던 십팔기보존회의 기창영상입니다. 위의 기창 총보와 비교하여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예도보통지의 기창보와 그 후에 창의 기법을 더하여 시연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음은 마상창, 기창입니다.
기창편의 내용은 기창에서 사용하는 창에 대한 설명과 기창의 무과시취제도를 설명하고 있고, 그 뒤로 기창보와 기창교전보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총도나 총보의 형태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와 같이(채색은 안되어 있습니다만;;)
각 세에 해당하는 그림만이 있을 뿐입니다.

기창에서 사용하는 창은 보장창과 같은 크기라고 합니다. 즉 15척, 약 3.5미터 정도입니다.


기창교전보의 경우에는 두명의 마병이 서로 창을 부딪히고 있는 한장의 그림에 모든 설명이 다 기록되어 한페이지로 설명이 끝납니다.

본래 무과에서 기창을 시험할 때는 騎芻라고 하여 세개의 추인(허수아비인형)을 찌르고 돌아오는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무예도보통지에 나와있는 기창보는 그와 다릅니다. 하지만 연습하는 법이기에 싣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땅위에서 하는 것에 비해 마상에서 하는 것은 단순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창은 매우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세명을 보아도 쉽게 알수 있는데요.
첫 시작하는 세인 신월상천세 이외에는
좌전일자, 우전일자, 좌후일자, 우후일자 와 같은 형태입니다.
좌우전후는 방향을 일은 一이고요. 자는 刺(찌르다)입니다.

기창교전보는 서로 150보떨어졌다가 서로 달려서 창을 한번 부딪히고, 다시 돌아서 부딪히고를 세번한다라고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는데요.
실제 기록에서 보면 기창교전은 매우 위험하여 부상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글로 보면 간단할 것처럼 보이지만요;;;

그럼 이상으로 기창편이었습니다.



11월 1일 토요일 경기데일리안과 (사)한국등산연합협회 주최의
제1회 남한산성 등산문화축제에서 십팔기 시범공연이 있습니다.

등산문화축제의 자세한 일정은 위의 이미지와 같습니다.
(관련기사 보러가기)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국난이 있을 경우 국왕은 강화로 피하고 세자는 남한산성으로 가서 견제하는 역할을 하였다고합니다. 이렇듯 조선시대 군사적 요충지였던 남한산성에서 십팔기가 재현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십팔기 보존회에서 시범단 연습생을 모집합니다.
다음은 십팔기 보존회 홈페이지 (http://sippalki.com) 게시판의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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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팔기보존회 시범단에서 연습생을 모집합니다. 연습생이 되시면 십팔기 시범단 훈련에 참가할 수 있으며 십팔기의 기초와 고급기술까지 무상으로 교육받을 수 있습니다.

십팔기 시범은 최소한 3년간 열심히 수련하여 실력을 인정받은 후에야 정식으로 참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종목의 경우 1년정도 수련 후에도 참가가 가능합니다.

연습생으로 선발되신 분들은 매우 자세하고 세심한 지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습생은 최소 주3회 수련에 참여해야 합니다.

또한  십팔기보존회의 시범공연에 의무적으로 참석하여 공연진행에 도움을 주셔야 합니다. 물론 이때 소정의 수고비가 지급됩니다.

항상심을 갖고 꾸준히 수련하면 누구나 정식 시범단원이 될 수 있으며 향후 진로는 상설시범공연단, 해외파견사범 등 다양한 진로가 열려있으니 한국전통무예의 발전에 큰 뜻을 품운 젊은청년들의 많은 지원바랍니다.

현재 십팔기보존회 시범단은 월~금, 오전 11시-1시, 창덕궁 옆 원서공원, 우천시에는 인사동 십팔기전수관에서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문의 : 박금수 사무국장(010-4734-1871), gspark187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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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시연단 연습생 이외에도 십팔기나 기공등을 익히고 싶으신 일반회원에게도 전수관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지난 번에는 무예에 근본이 되는 권법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럼 다음차례는 무예의 기본이 되는 곤봉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책에 써있는 바대로 하면
"곤은 모든 병기를 이용하는 세는 곤법의 외형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입니다.
즉 권법은 무예를 함에 있어서 몸을 움직이는 데이 근본이 되는 것이고
곤봉은 병장기를 익힘에 있어서 그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번째로 소개하는 기예를 곤봉으로 선택하였습니다.
참 요즘 보니 이 곤봉을 곤방으로 부르기도 하던데요.
그것은 무예도보통지에 보면 곤봉의 棒자가 당시 음이 방이었다고 표현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현대에는 이 글자를 모두 봉이라 읽으니 곤봉이라고 읽고 써도 될것같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곤방보다는... 곤봉이 어감이 좋아서;;;;

일단 무예도보통지의 곤봉편을 보면
다른 편과 마찬가지로 곤봉의 그림이 나옵니다.
헌데 이 그림은 우리가 아는 곤봉의 그림과는 달리 날이 붙어있습니다.
마치 창과 같은 형태이죠. 그것은 곤봉을 군중에서 사용하기 위해서 작은 날을 달아놓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척계광대에 이르러서 날을 달은 것 같다고 무예도보통지의 저자들은 써놓고 있습니다.

여튼 곤봉의 그 길이가 7척이고 무게는 3근이라고 합니다.
이때 척은 영조척과 주척이 있는데.. 영조척은 30.3cm 주척은 23.1cm 입니다.
어떤 것이 맞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목공에는 주로 영조척이 쓰였다고 하는데... 그림의 비율로보면 주척이 더 맞는거 같기도 하고.. 여튼.. 제가 실제 유물을 보지도 못하였고.. 나무로된 봉이 유물로 남아있을 것 같지도 않고.. ㅎㅎ

다음으로 <병장기> 라는 책에 곤봉의 제도에 대한 내용을 적어놓습니다.
그 책에는 곤봉에는 6가지 제도가 있는데 모두 견고하고 무거운 나무로써 만든다고 써놓았다 합니다.
길이 4-5척에 윗부분을 철로 싼 것을 가려봉이라 하고
머리부분에 날을 달고 아래에는 거꾸로된 쌍갈쿠리로 만든 것을 구봉
날은 없고 철조를 단 것을 조자봉
윗부분에대 곧은 침을 심어 이리 어금니처럼 한 것을 낭아봉
봉의 양쪽 끝을 모두 큰것으로 낭아처럼 한것을 저봉
도리깨같은 류는 철연협봉이라 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곤봉은 다른 병장기로 변용하여 사용하기도 하였기에 더욱 병장기의 기본이라 하였던 것 같습니다.

다음 내용은
권법편에서도 나왔던 것처럼 곤봉과 같은 뜻으로 고전에 전해지는 한자들을 밝히고 있습니다.
수(), 정(), 그리고 한조의 관명인 집금오의 금오 등이 모두 봉을 뜻하는 글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모원의는 곤과 봉은 같은 것이라 말합니다.
흔히 전하기를 곤은 한쪽끝이 다른 한쪽 끝보다 굵은 것을 곤이라고하고
양쪽의 크기가 같은 것을 봉이라고 한다고 하죠.
하지만 그 용법이 큰 차이가 있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바로 정종유의 <소림권법천종> 중 파곤제1로보 부터 파곤제6로보까지 싣고 있습니다.
이는 모원의의 무비지를 참조하면서 파곤만을 뽑아 넣은 것 같습니다.
이 파곤편은 서로 대련하는 연습법입니다.
실제 무예도보통지의 곤봉편도 그 보는 대련하는 법만 있습니다.
그에따라 소림곤법천종의 내용중에서도 대련부분만 이용한 것 같습니다.

여튼 곤봉하면 역시 소림곤이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나봅니다.^^
마지막으로 그 내용이 나오는데요
그 내용을 살펴보면

임진왜란때 중국의 장창, 우리나라의 편전, 일본의 조총이 천하에 유명해졌다.
세대로 전하여 내려오는 장창은 실로 무예중 왕이며 곤 또한 무예중 으뜸이 된다.
곤은 창의 반단(半段)인데 척씨가 날을 덧붙였으니 창과 곤은 표리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병기를 운용하는 신수족의 세는 곤법의 외형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때문에 모원의도 곤을 모든기예의 종법으로 삼았으며 "곤은 소림을 종이라 하고 소림의 설법은 정종유(소림곤법천종의 저자입니다.)의 천종보다 상세한 것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소림곤법천종의 내용을 담았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요즘에는 흔히 중국은 창, 우리나라는 활, 일본은 칼 이라고 널리 퍼져있는데요. 임진왜란을 겪은 후의 조선에서는 조총에 호되게 당하기는 한 모양입니다.
일본의 조총을 명시한 것을 보니 말이죠.

이제 그 다음 내용은 실제로 곤봉을 연습하는 그림과 설명입니다.
이 곤봉보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두사람이 대련하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그 때문에 총보와 총도가 다른 기예와는 표현이 다르게 되어있습니다.
(나중에 스캔하던지.. 그림을 따로 올리도록하죠 ㅡㅜ)

어떻게 다른가하면...
곤봉보는 약속대련의 형태인 만큼.. 같은 동작을 반복하여 시행합니다.
그래서 곤봉총보는 반복을 끊어서 하나의 작은 총보처럼 새로운 줄에 써넣었습니다.
그림을 싣는 총도의 경우에는 반복되는 동작은 모두 제거하고 동작이 다른 14가지 경우의 그림만을 표현하였습니다.(글로 쓰니 역시 설명이 안되는 군요.. 빠른 시일내에 원 그림을 올리도록하겠습니다.)





드디어 곤봉총도와 총보의 그림을 올렸습니다..(늦어서 죄송;;;)
여타 기예의 경우와 총도와 총보가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으시면
2008/09/09 - [무예/십팔기] - 조선시대 무예교본의 완성판, 무예도보통지
위의 글을 보시면 본국검의 총도와 총보가 나와있습니다. 그것과 비교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2008/06/04 - [무예/십팔기] - 십팔기-곤봉(장봉) 영상 
위의 글은 곤봉 영상인데요.
이 영상은 대한십팔기협회, 십팔기보존회에서 연습하는 곤봉보입니다.
무예도보통지와는 달리 개인이 연습하는 투로의 형태도 되어있습니다.
물론 무예도보통지의 원보대로도 수련하기도 하지만...
무예도보통지 원보의 곤봉보는 그 내용이 적기도 하고 기본적인 수들이라... 심심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

여튼 이것으로 일단 곤봉편입니다.^^

앞으로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십팔기의 종목들을 하나씩 소개하고자 합니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총 24가지 항목이 있지만 마상쌍검은 쌍검과 함께 설명할 생각이고
종목에 따라 내용이 적은 것은 한번에 설명하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24번 글을 쓰진 않을 것 같군요 ㅎㅎ
또한 제 개인사정상 정기적으로 쓰진 못 할 것 같네요(일단 내용에 대해 공부를 하고 써야 하니... ㅡㅡ;;)
앞으로 쓸 글들은 "박청정주해, <무예도보통지주해>, 동문선" 을 주로 참조할 것입니다.
여튼 그 첫번째 순서로 권법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순서라면 권법은 권4에나 나옵니다.
무예도보통지는 무예의 성격에 따라 순서를 나누었기 때문인데요.
찌르는 무기(刺), 찍어베는 무기(), 치는 무기(擊)의 순서에 따라 편찬했고
권법은 치는 무예로 분류되어 치는 무예의 첫번째로 나옵니다.

하지만 권법은 무예의 기본이고, 또한 아무래도 다른 병장기를 익히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이기에 가장 먼저 소개하고자 합니다.

무예도보통지는 전에 무예도보통지에 대해 설명한 글에서 말한 것 처럼
척계광의 <기효신서>와 모원의의 <무비지>를 주로 참조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무예도보통지에서도 그 두 책에서 몇마디 인용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척계광은 <기효신서>에서
"권법은 전쟁의 기예와는 관련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수족을 활발히 움직이게 하고 지체를 부지런히 하니 처음 배우는 자들이 무예에 들어가는 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모원의는 <무비지>에서
"점획을 분별하여 알고 난 이후에 팔법을 가르칠 수 있고, 안장에 의거하여 지내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 말 타고 달리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권법도 이와 같다고 말하겠다"고 하여 두 책에서 모두 권법은 무예를 하는데에 있어서 기본이 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면 권법은 전쟁에서 바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척계광의 이 말을 모원의도 그대로 인용하였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이런 말들을 서두에 쓰고 있는 것은 권법이 전쟁에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잊지말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는 무예라고 하면 권법은 기본이고 병장기를 꼭 익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권법"이란 무엇인가 논설을 하고 있습니다.
옛 서적에서 권拳이라는 글자가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그리고 권법이라는 뜻으로 쓰인 글자가 무엇이 있었는지 말해주는데요.
<좌전>에 "진나라 군주가 꿈에서 초나라 군주와 치고 받았다(博)" 하여 박이라는 글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때 박博이 곧 권박拳搏이다.
또한 어느 책에서는 변卞이라고도 쓴다. 뭐 이런 식인거죠.
곧 수박이란 권법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당송이래 권법의 역사에 대해 서술합니다.
권법의 기술에는 외가와 내가가 있는데 외가는 소림이 유명하고 내가는 무당의 장송계가 정통이다. 뭐 이런 내용이죠.
이 내용은 "조민욱 저, <칼끝에 천하를 춤추게하다>, 황금가지" 에 보면 내가권 편이 있는데요. 더 살을 붙여서 재미나게 적어놓으셨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외가계열인 소림보다는 내가 쪽을 좀 더 처주는 것 같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좀 인용하면
"내가의 술이 상대를 칠 때에는 반드시 그 혈을 치는데 혈에는 훈혈, 아혈, 사혈이 있으며 그 혈에 상응하여서 경중으로 치면 혹 죽기도 하고 혹은 기절하기도 하며 혹은 벙어리가 되기도 하는데 호발만큼도 어긋남이 없다"
혈을 치면 벙어리가 되기도 한다라...마치 무협지의 내용을 보는 것 같지 않나요?

이 다음에는 내가권의 수련법 중 근본이 되는 육로권과 십단금의 가결을 적고 뒤에 그에 대해 해설을 자세히 적고 있습니다.
이 가결이라는 것도 무협지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가결은 歌訣인데 즉 노래로된 비결이라고 보면 됩니다.
어떠한 동작에 대한 힌트들을 노래로 하여 기억하기 쉽고 동작연습에 도움이 되도록 한 것이죠.
무협지에서는 이 가결을 얻기 위해 피바람이 일어나기도 하죠. ㅎㅎ
무예를 전달함에 있어서 책이나 이런 도구의 도움이 없었을 때, 이런 방법을 이용했던 것이죠.
우리도 영어단어 외울때 말을 하면서 하면 더 잘외워지지 않습니까? 같은 이치인 것 같습니다. ^^

그 다음에는 무예도보통지에 기록한 도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요.
과거에는(즉 척계광의 책과 모원의의 책에는) 두사람이 마주보고 세를 취하고 있어 공격과 방어의 의미를 더하고 있었는데, 지금은(무예도보통지에는) 투로의 형태로 연결되어 있어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하고 마지막에 서로 얽혀서 씨름하는 것은 거의 유희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행해진지 오래되어 구보로 남겨두었다고 말하고, 그 중 소실된 10가지 세를 증보하여 결을 더하여 기록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잃어버린 10세라는 것은 이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은 흔히 말하는 송태조장권32세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예제보번역속집에서 2가지 세를 제외한 나머지 세를 이미 얻었었지만 무예도보통지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즉 권법보가 변형되면서 10가지가 사라졌기에 다시 가결의 형태로 적어놓았다는 것입니다.

기효신서에도 무예도보통지의 증10세는 빠진 22세만 나와있습니다. 무비지에서는 32세가 모두 나타나고 있고요.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은 22세와 + 오화전신세, 그리고 증10세 하여 엄밀하게 총 33세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기효신서와 무비지는 한페이지에 두사람이 마주보고 세를 취하고 있는 그림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는 세를 연결해놓은 투로의 형태로 그려져 있으며 마지막에는 두사람이 서로 씨름을 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은 현대에 와서는 몇몇 단체에서 행하고 있습니다만,
그 동작에 대한 해석차이로 인하여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해석 중 어느 것이 맞는 지는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2008/06/05 - [무예/십팔기] - 십팔기 중 권법 영상 
다음의 영상은 십팔기보존회 회원의 권법 시연영상입니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위에서 말씀드렸다 시피 혼자서 연습하다가 두명이 대련하는 형태로 나와있지만 그 것을 잃어버린 10세를 더하여 혼자 연습하는 투로로 변형한 것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저자들은 투로로 변형되면서 그 공격과 방어의 의미를 많이 상실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투로의 형태로 연습을 하는 것은 대련에 비하면 공격과 방어의 의미가 작을 수 있습니다. 대련을 하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무예의 동작에는 어떠한 것이나 공격과 방어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법입니다.
십팔기든 아니든 어떠한 무예를 수련하시는 분이라도 투로를 연습할 때는 한동작한동작 그 의미를 되새겨가며 연습하시길 바랍니다.^^(물론 저부터 연습열심히 하겠습니다..;;;;;ㅎㅎ)

무예도보통지는 조선 22대왕인 정조대에 편찬된 무예서로
조선시대 무예교본의 완성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은 임진왜란이후 약200년에 걸쳐서 무예서를 4권 간행하였습니다.
그 중 마지막이 바로 이 무예도보통지입니다.

무예도보통지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무예'를 '그림'으로 '계통을 밝혀' 서술한 책인 것입니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앞서 쓴 글인
2008/09/04 - [무예/십팔기] - 아직도 십팔기를 중국무술이라 알고 계신가요? - 십팔기란
에서 말씀 드린 바처럼 총 24가지 항목과 관복도설, 그리고 고이표가 4권에 나뉘어 수록되어있고, 각각의 무예에 대한 내용은 한글로 된 언해본 1권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아, 그리고 앞서 쓴글에서 빠뜨린 것 중에 병기총서와 기예질의 그리고 척계광과 모원의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병기총서는 무예도보통지를 만들기 이전 조선의 군에 관련된 사실들을 정리한 것이며
 기예질의는 애초에 임진왜란때 무예제보를 만들때에 담당자였던 한교가 명나라 장수에게 무예에 대해서 질문한 내용과 그 답을 적어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척계광과 모원의는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때 참고했던 여러 서적 중 가장 주되게 참고한 기효신서와 무비지의 저자인데 그들의 약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무예도보통지의 내용 중 본국검의 일부를 통해서 무예도보통지의 구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무예도보통지는 각 종목의 무기의 형태를 금식(조선의 지금의 형태), 화식(명나라의 형태) 왜식(일본의 형태)로 나누어 보여주고, 그 무기를 만드는 법부터 시작하여 각 기예의 내력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 뒤에 기예의 동작을 설명합니다.



위의 그림은 본국검보의 한 페이지로
"좌회 향전 작 장교분수세 우수우각 일타
잉작 백원출동세 거우수우각"
이라고 써놓고 밑에 각각의 세에 해당하는 그림을 그려놓았습니다.



위의 그림은 앞서 동작을 하나하나 그려놓았던 것을 그 세명을 이어서 보여주는 총보입니다. 이처럼 본국검이라는 하나의 투로는 여러가지 세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죠

보시면 글자의 방향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는 동작의 진행방향을 표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의 꼼꼼함을 알 수 있죠.




위에 나오는 것은 아까 보았던 총보를 그림과 함께 보여준 것으로 총도라고 합니다.
이 총도는 무예도보통지 이전에는 없던 것으로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면서 새롭게 창안된 것입니다.

세의 이름만으로 되어 있던 것을 그림과 곁들여 설명함으로써 글을 모르는 사람도 보기 쉬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글을 아는 사람도 더 보기 편했겠죠?

그리고 총보나 총도에서 보면 선들이 보입니다. 이 선들은 중간중간 원을 그리고 있는데요. 해당하는 동작에서 회전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동영상과 사진을 이용하여 무술교본을 만듭니다.
그러한 기술이 없었던 과거에는 이처럼 그림을 통하여 만들었고, 정확한 전달의 위해서 여러가지 표현을 고안하였습니다.

사실 요즘 시중에 나와있는 무술교본들과 비교하여도 꽤 훌륭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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