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벌써 5월이네요.
축제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는 5월인만큼 십팔기보존회도 다른 때보다 공연계획이 많이 잡혀있습니다.

공지를 하기엔 이미 늦은 것이지만...
당장 내일인 부처님오신날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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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파주 봉영사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위해서 작게 공연을 합니다.
시간은 12시경이 될 것같고요.

이 파주 봉영사는
지난 글인 2008/07/15 - [단상] - 침구학 원전 "황제갑을경" 강의 에서
소개해드렸던 묵계 서상욱선생과 인연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 인연으로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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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는 5월 5일입니다.

일시 : 2009년 5월 5일(화)  13시~13시30분,  15시30분~16시. 2회  공연
장소 : 남한산성 등(燈) 문화제  무대

교통편 : 지하철 8호선, 산성역 2번 출구, 9번 버스 종점(남한산성 로타리, 남문 주차장)


작년에 제1회 남한산성 등산문화축제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2008/11/10 - [무예/십팔기] - 남한산성 등산문화 축제 십팔기 공연 전체영상

저번에는 남한산성을 올라가는 입구에서 하였지만 이번에는 남한산성에 더 올라가서 무대가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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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 공항정에서 열리는 강서구청장기 국궁대회 공연입니다.

일전에 황학정에서 열린 활쏘기 백일장 개막식에서 공연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개막행사에 공연하게 될 것 같습니다. 10일 국궁대회에서는 십팔기공연을 안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공항정의 이름은 단순히 김포공항 근처여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우장산 공원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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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한옥마을 단오제
5월 28일-29일 까지 남산한옥마을에서 단오를 맞아 행사를 연다고 합니다.
이 때에 십팔기공연도 하게 되었습니다.

십팔기 공연은
5월 29일(금) 오후 3시 30분에 있습니다.
평일이라 많은 분들이 볼 수 있을지는 걱정스럽네요^^

국장으로 인해서 남산한옥마을의 단오행사가 취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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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2009년 5월 십팔기보존회 공연안내입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약 7개월에 걸쳐서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의 전 종목의 소개가 끝났습니다.
이하에는 각 종목의 그림과 그 밑에 해당 종목을 설명한 글이 링크되어 있습니다.


2008/09/17 - [무예/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1) - 권법


2008/09/23 - [무예/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2) - 곤봉


2008/10/10 - [무예/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3) - 장창, 죽장창


2008/10/22 - [무예/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4) - 기창(旗槍),
기창(騎槍)


2008/11/05 - [무예/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5) - 당파


2008/11/16 - [무예/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6) - 등패, 낭선


2008/11/24 - [무예/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7) - 예도


2008/12/02 - [무예/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8) - 본국검


2008/12/16 - [무예/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9) - 쌍수도, 왜검, 교전


2008/12/22 - [무예/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10) - 제독검


2009/01/12 - [무예/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11) - 월도, 마상월도


2009/01/29 - [무예/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12) - 쌍검, 마상쌍검


2009/02/15 - [무예/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13) - 편곤, 마상편곤


2009/03/13 - [무예/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14) - 협도


2009/04/13 - [무예/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15) - 격구, 마상재

이번에 소개할 격구와 마상재를 통해서 무예도보통지의 전 종목을 소개하게 됩니다.
무예도보통지의 마상무예들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격구와 마상재의 무예성(?)에 대해서 논란이 많은데요.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려고 하고, 우선은 격구와 마상재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선은 격구입니다.
흔히 격구는 서양의 폴로와 비슷한 형태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넓게는 공을 가지고 하는 스포츠들을 가리키고 있었으며,
좁게는 말을 타고 구장(공을 치는 채)를 사용하는 것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폴로라고 이해하기에는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죠^^

무예도보통지의 격구편 첫장에는 격구에서 사용되는 도구들의 그림이 나와있는데요
일단 첫째로 공이 나와 있습니다.
나무로 만든 공과 모구(털공)인데요. 모구는 가죽으로 만든 것입니다.
특히 이 모구로는 공에 고리를 만들어서 그 고리에 줄을 엮어서 말에게 끌고 가도록하여 뒤에서 촉이 없는 화살로 모구를 쏘아 맞추는 형태의 격구를 시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형식의 격구를 모구라고 명명하여 한체대의 심승구 교수께서 자세히 밝힌 논문도 있습니다.

여하튼 그 다음에는 구장(격구채)와 무족전(無鏃箭)(살 없는 화살)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무족전은 화살촉 대신 솜으로 둥글게 싸고 있는 형태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경국대전에 실려 있는 격구의 규정을 쓰고 있습니다. 무과규정이겠죠.
그 다음에는 용비어천가의 내용을 바탕으로 태조 이성계의 격구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놓고 있습니다. 태조의 격구 실력이 예전에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또한 태조가 격구시에 행했던 동작들을 뒤에 나오는 격구보에서 적고 있습니다.
용비어천가 자체가 태조와 그 선조들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니 얼마나 진실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용비어천가를 무예도보통지에 싣고 있는 것은 본 받아 열심히하라는 뜻이 아니었는가 생각됩니다.

그 다음으로는 격구라는 말이 쓰여진 용례를 찾아서 적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종목에서 권법이나 창, 봉 등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던 말 등을 찾아보았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동양의 축구 원류인 축국의 국이라는 글자는 격구의 격자와 뜻이 통한다고 하며, 결국 한 갈래이지만 축국은 발로 차는 것이고 격구는 말을타고 구장으로서 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격구에 대한 설명 중 하나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요나라의 풍속 중 사류(射柳)라고 하는 것이 있는 데 구장에 버드나무를 꽂고 맞추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격구와는 다른 것으로 평가하며 조선의 경우 사구(射毬)라는 용어가 용비어천가에서 처음 나타나는데 나무공을 50~60보 밖에서 높이 던지게 하고 박두를 쏘아 맞추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마치 클레이 사격 같네요^^ 다만 이것은 전수가 안되어서 무예도보통지를 쓸 당시에는 잘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는 격구보와 구장도를 싣고 있습니다.

격구의 경우 무예의 개념인 세로써 동작을 설명하고 있진 않습니다.
다만 몇가지 용어가 나오는데요.
비이, 방미, 할흉, 배지, 지피, 도령, 전령 등이 그것입니다.
어떠한 동작을 뭐라고 이른다고 謂之ㅁㅁ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위의 격구보 첫장의 마지막에 보면 "위지비이"라고 하고 있죠.
이런 동작들은 어떤 상황에서 해야하는 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경기장과 함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구장도입니다. 
아랫쪽의 깃발에서 말을 출발하여 앞에 동그라미가 5개 그려진 곳에 놓여 있는 공을 제어하며 세바퀴 혹은 그 이상 돌고 나서  위 쪽의 홍문(구문 : 골대) 를 향해 치고 골문안에서 또한 세바퀴 혹은 그 이상 회전 한 이후에 다시 공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마치는 것입니다.

이 전과정을 행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 또한 평가의 기준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무예도보통지에서는 적혀있지 않습니다.

다음은 마상재입니다.
마상재는 총 6가지 세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또한 사람에 따라 8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마상재에서는 동작을 세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름이 없이 제일, 제이, 제삼... 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들여다보면 제일세는 달리는 말위에서 서는 것으로 "주마입마" 혹은 "입마"입니다. 이 상태에서 한 손에는 삼혈총을 쏜다고 합니다.
제2세는 "초마"로 좌우로 말을 건너뛰는 것입니다. 속칭 좌우칠보라고 한다고 하며, 이 세를 좌우를 나누어서 2가지 세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제3세는 "마상도립"으로 말의 어깨에 머리를 대고 물구나무를 서는 것입니다.
제4세는 "횡와"로 말위에 가로로 누워 죽은 체 하는 것입니다.
제5세는 "등리장신"으로 말의 좌우 안장쪽으로 몸을 늘어뜨려서 앞에서 몸이 안보이도록 숨기는 것입니다. 이 또한 좌우를 나누어서 세를 2가지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제6세는 "종와"로 머리를 말의 꼬리쪽으로 하여 눕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마상재는 말 한마리 혹은 두 마리의 말로써 행하기도 합니다. 흔히 두마리의 말로 하는 마상재를 쌍마재라고도 하고요.

마상재의 시초는 중국의 오호십육국시대의 후조(後趙)의 시조인 석호라는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원숭이의 형상으로 만든 옷을 입고 말위에서 마상재를 하여 그 명칭을 원기(猿騎)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대개 기마술의 경우 원나라의 제도라고 합니다. 지금도 몽고사람들이 말을 잘타는 것처럼 그 쪽 사람들의 기마술은 예전부터 유명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서속에서 마상재의 흔적들을 찾아서 적어놓고 있습니다.
중국의 사서에서 부터 우리나라의 기록까지 다양하게 적고 있는데요.
징비록에서도 내금위의 조웅이 용감하여 말위에 서서 달리면서 적을 살육할 수 있었다라고 적은 내용이 곧 지금의 제1세와 같은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옛날에는 마상재와 같은 것들을 희마라고 하였다고 하며 희마의 용례를 또한 적고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지금의 마상재를 희마라고 부르는 것 또한 옳은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마상재는 설명하기는 총6세라고 하였으나, 좌우 구분하여 8세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과
두마리 말로써도 가능하다는 것을 제1세하나만 더 추가하여 마상재보에 그려넣어서 총 9개의 보로써 적고 있습니다.
밑의 그림은 그 중 첫 그림인 제1세 주마입마상 을 말 한 마리위에서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현재 이러한 마상무예의 경우 속초에 있는 충혼당과 예전 24기보존회의 최형국사범의 선기대가 가장 훌륭하게 선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로써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연재가 마무리가 되었네요.
제가 부지런 했으면 더욱 빨리 마칠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ㅎ
여하튼 저로서도 매우 좋은 공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글을 보시는 많은 분들도 한국의 전통무예인 십팔기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사 원문보기  전쟁기념관, 국군 의장행사 재개  , 국군의장대 전통무예 시범

국방부에 삼군의장대와 여군의장대 외에 전통의장대가 하나 더 있습니다.

다른 부대에는 없는 것으로 유일하게 국방부에만 있는 부대입니다.

국방부 전통의장대는 지난 2006년부터 십팔기와 인연을 맺어서 십팔기를 수련하고 공연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전통의장대는 있었고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검도나 여타 무술을 배워서 전통의 복장을 입고 공연한 형태였죠.

의장대에서도 동작에 대한 고민이 많았기 때문에 2006년에 십팔기보존회와 연결이 되게 되었고, 그해 1월,2월 동절기에 집중훈련하고 3월부터 기존의 동작을 지우고 십팔기 동작을 기본으로 공연을 시작하였습니다.

어느새 의장대의 십팔기 공연도 4년째에 접어들고 있네요.
당시 저도 의장대의 지도를 도왔기 때문에 감회가 새롭네요.

위의 링크한 기사는 올해 의장대의 공연이 시작되었다는 기사입니다.
기사 내용에서도 전통무예 십팔기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매우 기쁘네요 ㅎㅎ

의장대의 활발한 활동과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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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몇마디 더 하자면...
의장대의 경우 군대라는 특성 때문에 인원이 계속 바뀌어서 기술의 축적이 힘들다는 점.
그리고 그것과 연관하여 빠르게 동작만을 가르치다보니 기본기를 소홀히 한다는 점.

이러한 점들만 좀 고려해주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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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참 오랜만입니다만..
그렇다고 그간 책을 안 읽은 건 아니었습니다.. ㅎㅎ
여하튼.. 무사도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고 짧막하게 서평을 써보고자 합니다.

무사도란 무엇인가(동문선현대신서130)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니토베 이나조 (동문선, 2002년)
상세보기

이 책은 19세기 후반 20세기 초에 살았던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의 한 사람인 니토베 이나조가 저술한 책입니다. 예전 일본의 5000엔 권에 이사람 초상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본 책은 십팔기와도 인연이 깊은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께서 번역하고 도서출판 동문선에서 간행한 판입니다.
근래에 다른 분이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하여 간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은 총 1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무사도라는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앞부분에는 무사도가 가지고 있는 요소들을 꼽아보면서 무사도의 성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의, 용, 인, 예, 성, 명예, 충의 등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사도를 통해서 일본의 문화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일본이 가지고 있는 정신문화의 근원이 무사도임을 밝히며
현실에서 무사도를 어떻게 계승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 동기가 매우 재미있습니다.
어느날 니토베 이나조에게 외국의 학자가 일본에서는 학교에서 종교교육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를 물었다고 합니다.
이에 그렇다고 대답하였는데, 그 학자는 그 사실에 너무나 놀라며 그렇다면 어떻게 아이들에게 도덕교육을 하느냐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이에 명확하게 답변할 수 없었던 저자가 이에 대해 고민한 결과가 바로 무사도였던 것입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동기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서양인들에게 일본에는 무사도라는 것이 있어서 우리식의 도덕교육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해명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그리 어렵지 않게 쓰여있습니다. 무사도의 개념을 이해시키기위해서 다양한 예시를 제시하고 있으며.. 서양의 철학 중 비슷한 개념들을 비교하며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쉽게 쓰여지고 무사도라는 개념을 여러방면에서 살피고 있기 때문에 무사도라는 개념의 윤곽을 잡기에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글쎄?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물론 니토베 이나조가 그 분야에 대해서 전문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여튼.. 분량이 그리 많지도 않고 내용이 딱딱하지 않아서 읽어볼 만 한 책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나서 들었던 생각은 서문에서 서양인이" 종교교육 없이 어떻게 도덕교육을 합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종교들이 도덕교육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도덕교육은 꼭 종교를 통해서 할 필요는 없겠죠.
게다가 그 질문을 한 서양인은 저명한 법학자였다고 합니다. 당시 서양의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조차 타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 정도 밖에 안되었었구나 하는 점이 씁쓸한 생각이 들게 하였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의 경우 과거에서 부터 이어져온 정신문화라면 어떤게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강의 기적, 2002 월드컵때의 우리.. 우리나라도 무언가 기저에 깔려있는 의식들이 작용했기에 앞서 말한 일들이 가능한 것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개념을 찾고 만들 생각은 미쳐 하지 못했죠.
사실 무사도라는 것도 에도시대 이후에 유교가 사무라이층에 유입되면서 정리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대이후에 다시 재생산되어서 현대에 까지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되고요. 
우리도 이상적인 상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형성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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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가 갈수록 늦어집니다;;
저의 게으름 탓이죠 ㅎㅎ
여하튼 이번에는 협도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그림 중 가운데가 협도 입니다.
좌우에는 중국과 일본의 협도와 비슷한 무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왜식의 장도(나기나타)이고요
오른쪽은 화식의 미첨도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저자들은 이들 무기가 대동소이하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통해보면 실제로도 대동소이하군요^^

이 협도는 월도와 마찬가지로 대도 종류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 협도를 보면 우리는 일본을 먼저 떠올릴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에서는 아직까지도 나기나타를 많이들 하기 때문일까요?

무예도보통지의 저자들도 협도편에서는 일본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였습니다.
사실 중국의 대도 종류에 대해서는 월도편에서 이미 설명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미 월도편에서 미첨도에 대해서도 나왔었으니까요.

여튼 협도와 같은 종류의 칼을 일본은 옛부터 많이 써왔던 것 같습니다.
무비지의 저자 모원의도 "일본도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는데 자루가 긴 것은 진중에서 길을 여는 데에 사용되어 선도(先導)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칼에 끈을 매어서 어깨에 차거나 손에 잡고 뒤에서 수행하는 데 사용되어 대제(大制)라고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비지를 쓸 당시에는 별로 쓰이지 않았다고 하네요.

무예도보통지의 저자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전하고 있는데요.
도요토미 히데요시 때에 이 미첨도를 좋아하여서 늘 좌우에 진열해놓았다라는 기록입니다. 일본의 나기나타는 이처럼 남성들의 상징이었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여성들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도 협도라는 이름의 칼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의 협도와 이름만 같을 뿐 다른 무기라고 하는군요.
(일본의 협도 이미지를 찾아보려 하였지만... 찾기가 힘들군요.. 혹시 일본도의 고수분들이 보신다면 어떤 칼인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밑의 그림은 협도의 총보와 총도입니다.
이번 협도편에서는 영상이 없습니다.
다음에 협도 영상이 생기면 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
협도를 시연하면 보기에는 월도와 비슷합니다. 실제로 총보를 보시면 월도에서도 자주 나왔던 용광사우두세가 협도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월도와는 또 다른 맛(?)이 있습니다. ㅎㅎ

이것으로 협도편을 마칩니다^^
지난 2월말에 프로젝트관련 자료조사를 위해서
일본 치바현 가츠우라시에 위치한
국제무도대학 http://www.budo-u.ac.jp
에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도대학에 대한 내용과 가서 느낀 점들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국제무도대학은 체육학부 하나와 외국인들은 위한 특별과정으로 별과가 있습니다
체육학부 내에는
무도학과
체육학과
스포츠트레이너학과
국제스포츠문화학과
이렇게 4개의 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단 우리의 관심사는 무도학과였죠 ㅎ
무도학과는
검도, 유도, 가라테, 합기도, 궁도, 나기나타, 소림사권법의 전공이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그렇구나 하겠지만 소림사권법은 왠걸? 이겠죠?
그에 대해서 질문을 하니
일본의 소림사권법은 그 원류는 중국의 권법이지만 일본식으로 발달한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소림사권법이라 따로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수련장면을 보고 싶었으나...
이번에 갔던 목적이 그런 것이 아니었고.. 연습장면은 잘 보여주지 않아서.. 보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어서 또 가게 된다면.. 소림사권법과 나기나타만은 보고 싶네요^^

이 국제무도대학이 위치한 가츠우라시는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동해안의 작은 시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바닷가와 접한 도시로 항구도 있는데.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잘 찾는 곳이라고 합니다.
해수욕장은 가츠우라시보다는 그 주변에 있는 곳이 더 유명하다고 하고요 ㅎㅎ
동경과는 거리가 꽤 있었는데..
애초에 국제무도대학을 설립할 때에 가츠우라시에서 땅을 제공하겠다고 나서서 그 위치에 설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이 부러운 것은 다른 것은 몰라도 무도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된 학교가 있다는 것과 그 학교내에 체육관이었습니다.
매우 커다란 규모의 체육관과 시설은 우리나라에도 저런 체육관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참, 그리고 아까 외국인을 위한 별과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제도가 매우 좋습니다.
외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과정으로 1년과정인데요.
이 과정은 처음에 등록금을 내는데
그 이후 그 돈을 월마다 나누어서 생활금으로 쓰라고 돌려준다고 합니다.
즉 합격시 무료로 유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일본무술을 하시는 분들 중에 유학을 생각하고 계시는 분들은 국제무도대학의 별과를 알아두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가츠우라시가 좀 외진 곳이라 많이 심심하다는 점이 단점이네요..
하지만 공부와 수련을 하기에는 아주 좋은 환경인 것 같습니다 ㅎㅎ
딴 생각 할 것이 거의 없거든요;;;

국제무도대학에서 자료조사를 마친 이후에
동경으로 이동하여 무도관과 강도관을 갔었습니다.
무도관은 물론 좀 다르겠지만 마치 장충체육관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장충체육관보다는 무도관은 본래는 무예를 위한 공간이라는 의식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만.. 여튼 요새는 대중을 위해 콘서트나 공연을 위해 사용하기도 하죠.

여하튼 찾아갔을 당시에는 단검대회라는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두뼘 정도의 길이의 짧은 죽도를 들고 서로 시합을 하고 있었는데요.
매우 재미있는 광경이었습니다.
일본의 검도에서도 다양한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근대 유도의 본관이라고 할 수 있는 강도관을 가보았습니다.
가서 사람들이 수련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매우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수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젊은 사람들이나 무술을 하지만 일본에서는 머리가 흰 할아버지들도 모여서 함께 수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매우 보기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사진을 첨부하였으면 더 좋았겠습니다만...
사진은 다음기회에;;; ㅎㅎ
일본에 가서 느낀 점은 일본은 무예라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국제무도대학의 도서관에는 무술에 관련된 책만 책장 몇칸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주제의 무술관련 서적들이 꾸준히 출판되고 있었습니다.
책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컨텐츠들에서도 무도, 사무라이, 전쟁과 관련한 문화 컨텐츠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밖에 나가서 보니 일본과 비교하여 우리나라 무예, 십팔기의 특성이 어떠한 것이구나 하는 것들이 더욱 드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기회가 되면 중국에도 가보고 싶네요^^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13번째로 소개할 종목은 편곤과 마상편곤입니다.
어쩌다보니 11번째부터 이번 편 까지는 마상무예가 있는 종목들이었습니다.
물론 한참 앞서서 기창(騎槍)을 소개한 적도 있었죠.

여튼 마상무예는 이번편에서 마무리가 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격구와 마상재는 어디갔느냐라고 물으시는 분들이 계실것 같습니다.

이것은 제 판단입니다만
격구와 마상재는 마상무예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은가 하고 생각합니다.
마상재의 경우 무예라기 보다는 기마술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격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기마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스포츠라고 볼 수 있죠.
여튼 넓은 의미로 본다면 마상무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전 그냥 기마술정도로 말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실제로 일본의 무예십팔번의 경우에는 기마술과 수영술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편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일단은 보편곤입니다.

편곤은 도리깨를 상상하시면 거의 그대로 입니다.
보편곤이란 마상편곤에 대비되어서 편곤을 칭하는 것입니다.
사실 편鞭이라는 한 글자 만으로도 편곤이라는 무기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세속에서는 철련가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가라는 글자가 도리깨를 뜻하니, 직역하면 철로 연결된 도리깨 정도 이겠네요.
그 중 짧은 쪽을 자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무예도보통지에는 편곤의 긴 편을 따로 칭하는 말을 적지 않았으나
모편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편곤도 다른 무예와 마찬가지로 제일 처음에 중국의 편곤과 조선의 편곤을 비교하였습니다.
각각 길이가 조금씩 차이가 나고 있으며, 주요한 차이는 자편과 모편을 이어주는 고리의 개수 혹은 길이의 차이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편곤은 고리 하나로 자편과 모편을 연결하고 있으며 중국의 경우 6개입니다.
마상편곤의 경우에는 우리나라는 고리 3개로 연결하였고, 중국의 경우는 자편의 길이와 동일한 길이의 사슬로 연결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무예도보통지의 저자들은 중국의 방식처럼 연결 고리를 더 길게 해야하며
손잡이를 더욱 단단하게 하여 충격력을 더 크게 하여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보편곤의 경우 예전에 곤봉처럼 편곤과 봉이 서로 겨루는 형태로 도보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때문에 이번의 총도의 경우도 다른 총도와는 달리 총 10가지 경우를 배열하고 있습니다.





마상편곤의 경우에는 모편의 길이가 보편곤의 경우보다 조금 짧았습니다.

마상편곤의 내용 중에 한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본래 마상편곤은 서융의 장기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편곤이라는 무기가 도리깨와 비슷하다보니
오히려 농사를 짓는 한족들 중에 융족들보다 편곤을 더 잘 다루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죠^^;

실제로 그러한 것인지 편곤이라는 무기가 농기구와 비슷하다보니 자신감을 갖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편곤을 다른 무기에 비해서 친숙하게 다루었던 모양입니다.

마상편곤은 조선시대 무과 시험 종목 중 하나였는데요.
사람모형의 추인을 가격하였기 때문에
편추라고 칭하였습니다.

조선 후기의 기병들은 마상편곤을 사용하는 전법을 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무예도보통지를 만들 당시 편곤은 조선에서 매우 주요한 무예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위의 링크를 통해 가시면 원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박정진 교수는 한양대에서 문화인류학을 강의하고 계시다고 하네요
세계일보의 초개 문화부장을 지내셨다고도 합니다.

앞으로 매주 1편씩 무예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한다고 합니다.
지난 2월 10일 그 첫번째 이야기인 (1) 영원히 사라질 뻔한 무경 편이 연재되었습니다.

제목에서 보면 짐작하시겠지만 임진왜란이후 조선시대 전체에 걸쳐서 편찬된 무예도보통지와 무예제보, 무예신보 등의 한국의 무예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문과 대비되는 무(武)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무예를 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분야의 학자의 눈으로 본 무예이야기는 또한 새로운 느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각자의 무예에 얽매여 있는 무예인들보다 자유롭게 글을 쓰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앞으로의 연재가 기대가 됩니다^^

무예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한번쯤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십팔기 종목은 쌍검입니다.
쌍검은 흔히 아는 것처럼 양손에 한자루씩 두자루의 칼을 들고 운용하는 검법입니다.
쌍검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실제로 양손에 짧은 요도를 들고 운용하였습니다.
이미 쌍수도를 소개하였으니 아시겠지만 쌍수도와는 다른 것입니다^^

쌍검은 칼날의 길이가 2척 5치이고, 자루는 5치 5푼 무게는 8량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따로 제조하지 않고 요도 중 짧은 것을 골라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그러한 이유로 무예도보통지의 쌍검편에서는 다른 편과는 달리 쌍검의 그림을 나열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인 환도의 크기 규정은 칼날이 3척 3치, 자루가 1척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에도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이 규정은 엄격히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등패나 제독검 등 다른 기예에 사용되는 환도(요도)의 크기는 약간씩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청나라의 팔기군을 보충하기 위해 만들어진 녹영군이 쌍검을 사용하는데 그 쌍검은 검막이 반원형태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이는 쌍검을 하나의 검집에 넣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무예도보통지의 저자들은 쌍검을 하나의 칼집에 꽂는 제도를 취할만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쌍검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많은 것이 검무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무편에서 송태종이 수백명의 검사에게 검무를 가르쳤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고
공자가어에서는 자로가 융복을 입고 칼을 뽑아서 공자께 보이고 말하길 옛날의 군자는 검으로써 스스로를 호위하였다고 합니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쌍검은 쌍검무의 형태로 오늘날에도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요즘 인기를 얻었던 신윤복, 그의 그림 중에도 기생들이 쌍검무를 하는 그림이 있었죠
위의 쌍검대무가 바로 그것이죠

이처럼 화려한 쌍검의 동작들은 춤으로 변용되어서 많이 전해진 것 같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전한 이후에
무편에서 쌍검의 사용법에 대해서 13가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상대가 복호세를 사용하여 머리나 다리를 쳐오면 좌수로 지키어 막고 우수로 벤다.
상대가 곤봉으로 치는 철봉세의 공격을 해오면 옆으로 비껴 피하면서 공격한다.
와 같습니다.
그 외에 수평창세, 독구세, 단제세, 노승타장세, 철봉세, 횡용창세, 선인교화세, 노관함식세, 편포세, 조천세, 호헐세를 통한 공격에 대한 쌍검의 공방법에 대해 써놓았습니다.
이는 전체적으로 한손으로 막고 한손으로 공격하는 쌍검의 묘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처럼 과거의 무예는 수평창, 독구, 단제 노승타장 과 같이 세명으로 전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그 동작이 어떠한 것인지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저 또한 무편에 나온 세명은 알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몇몇 세들의 용어는 무예도보통지의 세명에서도 나오는 것이라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합니다만^^

마상쌍검은 보병의 쌍검과 같은 요도를 사용하였습니다.
앞서 녹영군의 쌍검을 말씀드렸는데요.
녹영군의 쌍검은 조선의 쌍검보다는 약간 길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마상에서는 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모원의에 이르러야 마상에서 단도를 운용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마상에서 긴칼을 양손으로 운용하는 것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옛 기록에 하간왕 옹이 관중에서 패하였으나 진안이라는 자가 있어 7척의 길이의 두 자루의 칼을 들고 말을 달리며 운용하여 적을 달아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무예도보통지의 저자들은 보통사람을 능가하는 용맹이기는 하지만 항시적으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적당한 것이 좋은 것이겠죠^^


밑의 영상은 십팔기 보존회의 쌍검 시범공연 영상입니다.
많은 인원이 쌍검을 운용하니 화려하고 보기가 좋은 것 같습니다^^



다음의 영상은 쌍검과 창이 겨루는 쌍검창교전입니다.
한번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번에는 무예도보통지의 무예 중 월도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월도는 다들 삼국지의 관우가 사용한 무기로 잘 알고들 있을 겁니다.
사실... 관우가 있었던 시절에는 월도라는 무기가 없었다고 합니다만..
여튼 후대의 사람들은 관우가 월도(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전장을 누빈 것으로 기억하고 있지요.

그 청룡언월도가 바로 월도입니다.
청룡언월도, 언월도, 월도등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도신의 형태가 달과 같다고 하여서 그렇게 불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월도같은 무기의 종류를 대도류(大刀類)라고 합니다.
월도이외에도 중국의 미첨도, 한국의 협도, 일본의 장도(나기나타) 와 같은 것들이 모두 대도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무예도보통지에서는 <병장기>의 내용을 인용하며 봉취도, 굴도, 방도, 조천도, 정로도, 편도, 단도와 같은 다양한 대도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왼쪽의 그림은 무예도보통지에 나와있는 월도의 그림입니다.
오른쪽이 중국식이고 왼쪽이 금식(조선식)이죠.

중국식은 딱 봐도 알겠지만 매우 화려합니다.
그에 반해서 조선식은 소박하죠.
그렇지만 용의 입모양의 자루와
자루끝의 철준과 같이 있어야 할 요소들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차이점은 무게인데요.
중국의 것은 날이 조선의 것보다 두꺼웠다고 합니다.
때문에 더 무거웠을 것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저자들은 이에대해서 그 근량을 무겁게 할 필요는 없으나 날을 두껍게한 중국의 제도가 사납고 위엄이 있으므로 본받을 만하다고 적고 있습니다.


























마상월도에서는 보병의 월도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무예도보통지의 그림을 통해보면
보병의 월도와 기병의 월도는 별 차이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상에서 쓰는 도는 길어야 하는데 앞으로는 말머리를 지나야 하고 뒤로는 말꼬리를 지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월도의 길이가 중국식은 8척이 넘고 조선식은 7척이라고 하였으니 말가운데에 앉으면 충분히 말머리와 말꼬리를 지날 수 있었을 것 입니다.
밑의 그림처럼 말이죠.





밑의 그림은 월도총도입니다.


총도에서 보면 좌우로 움직이며 월도로 내리치는 동작이 있습니다.
바로 세번째 줄인데요.
그 세명이 바로 오관참장세입니다.
여기서 오관은 삼국지의 관우가 조조에게서 떠나오면서 지나온 관문들을 말합니다.
참장은 그때 관문을 지키던 장수들을 베었다는 것입니다.
월도와 참으로 어울리는 세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밑의 영상을 통해서 실제 월도를 운용하는 모습을 보시죠.


밑의 영상은 월도의 투로를 변형하여 난이도 있게 각색하여 홀로 공연한 모습입니다.


무비지를 썼던 모원의는 월도는 훈련할 때에 웅장함을 보이는 것이지 진중(전쟁)에서 쓸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합니다.
하지만 왜한삼재도회를 쓴 良安尙順은 미첨도는 야도(野刀)라서 사용하기 어렵다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같은 대도류였지만 일본과 중국의 생각이 차이가 나는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요?

무예도보통지에서는 월도는 총36세가 (36도법)이 있었다고 말하였으나 아쉽게도 이미 무예도보통지를 정리할 당시부터 모든 세가 전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이상으로 월도편을 마치겠습니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무예는 제독검입니다.
제독검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 제독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습니다.

이여송은 다들 아시는 것처럼 임진왜란 당시 원군으로 왔던 장수입니다.
또한 이여송의 선조가 조선 출신으로 유명하죠.
이여송은 철령위사람이었다고 하네요.
이 철령위는 또한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이죠.

고려시대에 명이 철령이북의 땅을 영토로 주장하려하자
고려에서 출병을 하였다가 위화도 회군으로 결국 조선이 건국되게 되는
이 대목에서 나오는 철령이북의 땅이 바로 철령위를 말하는 것이죠.

여튼 이렇게 이여송은 조선과 나름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제독검은 이여송의 검법이었다거나 이여송이 직접 전수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이여송 제독 휘하의 장수인 낙상지라는 장수를 통해 배운 검법입니다.
더 명확히 말하면
임진왜란기에 유성룡은 군사들을 낙상지에게 보내서 훈련받게 하였습니다.
이에 낙상지는 휘하의 10명을 교사로 삼아서 그들에게 창, 검, 낭선 등을 연습시켰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유성룡의 "징비록"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하는 군요.
무예도보통지의 저자들은 이런 내용을 전하고나서
낙상지가 이여송 제독의 표하 이므로 제독검의 명칭은 여기서 나오지 않았겠는가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뭐... 정확한 사실여부와는 관계없이. 당시 사람들은 제독검은 이여송의 검법으로 인식했던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무예도보통지에서는 이여송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이여송이 동방(우리나라를 말하는 거겠죠)에 있을 때 통진 금씨의 딸을 취하여 시희로 삼아서 몸에 지니고 있던 검을 증표로 주면서 떠날 때 말하기를 '아들을 낳으면 천근이라 부르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과연 천근을 낳아서 그 후손이 거제에 많이 거주했다고 합니다.
영조때에는 천근의 현손(고손자)에게서 앞서 말했던 검을 받아서
이여송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칼에 새기고 칼집을 장식하여
무예도보통지를 만들적에는 이여송가에 되돌려 주었다고 합니다. ^^

제독검도 예도와 마찬가지로 요도로 수련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여송이 남기고 갔다고 하는 검은(정확히는 도입니다만)
곧은 형태로 직도였습니다.
또한 그 칼은 이여송가에 돌려주기 전, 즉  200년쯤 후에도 녹슬거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독검은 총 14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음은 그 시범영상입니다.

좀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그간 좀 바빴던 터라;;; 죄송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무예는 쌍수도와 왜검 그리고 교전 입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죠.
바로 왜로부터 기원한 무예라는 것입니다.

물론 차이점도 있습니다.
쌍수도의 경우 왜의 칼을 보고 그것을 모태로 하여 만든 것이고
왜검은 왜에 가서 직접 배워온 것이며
교전은 배워온 왜검을 토대로 창작한 것입니다.
여하튼 이 세가지는 무예도보통지의 무예 중 그 기원을 일본에 두고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럼 우선 쌍수도부터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쌍수도는 여러가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쌍수도란 이름은 양손을 사용한다는 문구에서 비롯된 것이구요.
그 외에 용검, 평검, 장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쌍수도는 본래 장도長刀라는 이름으로 무예제보에 수록되었습니다.
당시 무예제보는 왜군을 상대하기 위한 전법인 절강병법의 원앙진에 필요한 시급한 무예를 수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쌍수도 즉 장도는 원앙진에는 필요 없는 병장기 였으나 무예제보에 수록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조총수에게 쌍수도를 들도록 하여 조총사격후에 근접전을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또한 가왜라고 하여서 군사훈련시 가짜 왜군 역할을 하는 병사들이 쌍수도를 들도록 하였던 것 입니다.

쌍수도는 원래 칼날의 길이가 5척이며 그 중 동호인(날을 보호하는 구리)이 1척 자루가 1척5치로 총 6척 5치의 길이였다고 합니다. 환산하면 총 길이가 거의 2미터 가까운 엄청난 길이죠... 
무예도보통지에 이르길 왜인들은 1丈을 뛰어와서 칼을 휘둘러 병사들을 양단했다고 합니다.
이 기세에 병사들이 눌려서 대적하기 힘들었다고 하고요.
만약 사실이라면 5미터 전방에 있던 적이 한 순간에 가격을 하였던 셈이니 엄청났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때에는 이미 제도가 바뀌어 검법은 쌍수도를 운용하는 검법이었지만 칼은 요도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무겁고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다음은 쌍수도의 총도입니다.
전진한 후에 초퇴방적, 재퇴방적, 삼퇴방적세로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원지로 돌아가라고 적혀있고 다만 그림 표기는 한 번만 하였는데요
이 것은 한 번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반복을 생략한 것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다음은 왜검입니다.
왜검은 같은 이름으로 
무예제보번역속집에 수록되었었지만...
그 내용은 다릅니다.
무예제보번역속집에서는 교전의 형태였죠.
또한 기효신서에서 비롯한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의 왜검은
숙종 당시 김체건이란 군관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서
그 비법을 얻어온 것이었던 겁니다!!! (스파이죠. 지금으로 치자면.. 군사기밀을 빼온 셈이니..)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일본도의 우수함은 세계에 알려져 있었나 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자들도 왜검의 우수함을 인정하며 중국도 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적어놓았습니다.

왜검보에는 4가지 유파의 검술을 적어놓고 있습니다.
그 유파는
토유류, 운광류, 천류류, 유피류 입니다.
김체건이 이 4가지 유파의 검술을 얻어왔으나 이미 산실되어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할 때에는 운광류만 행해졌다고 합니다.
이 4가지 유파의 검술은 일본에도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조선세법은 중국에서 찾아오고... 왜검은 조선에 있고... 참 아이러니 하죠;;
이에 대해서 그 유파의 검술이 일본을 대표할 만한 검술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없어진 것이라 설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조금 궁색하기도 합니다.

여튼 이렇게 4가지 유파의 검술이 있기 때문에 왜검편에는 총도가 4개 수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지금부터 이야기할 교전보까지 합치면 5개가 수록되어 있는 거죠.
교전은 앞서 말한 것처럼 왜검을 바탕으로 김체건이 새롭게 창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따로 교전보라고 칭하였으나, 본디 왜검에서 비롯된 것이라서 왜검보의 뒤에 함께 붙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래의 교전보는 양날의 검으로 그려져 있었으나, 지금은 외날인 요도로 하였다고 합니다. 교전을 수련하는 중의 사고를 염려해서라고 하네요.
그래서 교전을 익힐때는 가족으로 몇 자되는 나무를 감아싸서 요도를 대신하여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칼을 목도라고 하였다고 하네요..

쌍수도와 달리 왜검과 교전에는 세명이 없습니다.
교전을 시작할때에 견적출검세가 있긴 하나. 그 뜻을 풀이해보면 알 수 있듯이(적을 보고 검을 뽑는..) 그리 의미 있는 동작은 아니죠..
대부분의 설명이 우수우각 혹은 우수좌각 등 손과 발의 좌우를 통해서 동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왜검과 교전의 총도에는 세명 없이 그림만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혹시 그림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면 다른 것들에 비해서 찾기가 더 힘들것 같군요^^;

밑에는 교전보의 그림 중 하나 입니다.

이하는 십팔기보존회의 쌍수도 시연 영상입니다.
2미터는 되지 않지만 실제크기의 쌍수도에 가깝게 재현하여 보았습니다.


이상으로 쌍수도와 왜검, 교전 편을 마칩니다.^^


무예도보통지의 무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본국검이 아닐까 싶습니다.
본국검은 그 명칭에서 부터 한국 고유의 전통무예라는 기운이 팍팍! 풍기기 때문이겠죠.

제가 어렸을 때 다녔던 합기도장의 한켠에 본국검 총도가 걸려있었습니다.
검도를 하는 단체 중에서 본국검을 모르는 단체는 없을 겁니다.
또한 본국검협회라는 사단법인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무예단체들이 전통무예를 표방하면서 본국검의 명칭을 많이 이용했죠.
네이버에서 "본국검의 비교" 라는 키워드로 검색하시면 다양한 단체의 본국검 영상을 한꺼번에 올려놓은 게시물이 검색됩니다.
한번 비교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딴소리는 이만하고 무예도보통지의 본국검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본국검에 또 다른 명칭으로 신검(新劍)이라고 불립니다.
이 본국검은 예도와 같은 요도로써 수련합니다.
본국검의 기원을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자들은 신라의 화랑이었던 황창랑에서 찾습니다.
나이가 7세였던 황창랑이 저자에서 검무를 추어 유명해지고
백제왕에게 불려가 검무를 추게 되었는데, 이 기회를 틈타 백제왕을 찔러 죽이고 백제인에게 죽었다는 <여지승람>의 고사를 인용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검무 중에 황창랑과 관련된 검무가 아직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러한 이유로 신검이라는 별칭이 신라검의 신검이 아닌가? 하는 주장도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조선세법 24세를 통해서 새롭게 만든 것이기 때문에 신검이라고 하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앞서 2008/11/24 - [무예/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7) - 예도
에서 무비지에서 검법을 조선에서 얻어왔다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고 소개했었습니다.
본국검의 설명에서도 그 이야기가 반복되어서 나옵니다.

"본국검의 연기(緣起)를 황창랑으로 인하여 신라로 잡지만, 신라때의 검술인가에 대해서는 고증할 수가 없다." 고 말하며
모원의가 조선에서 검보를 얻었다고 하였으나..
그 창안과 그 저수는 물론하고 모원의의 세대와도 시간이 흘러 상호간에 주고받은 것이 누구인지도 확실히 모른다.
본국의 사람들은 어찌하여 스스로 전수하고 스스로 이습하지 아니하고 꼭 무비지를 기다려서 전습하는 지 모르겠다. 하며 본국검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도와 본국검에 있어서는 조선의 무예에 대한 자존심이 나타나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본국검은 그 이름에서 이미 本國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니까요.
또한 예도와 본국검은 다른 검법에 비하여 세가 많아 투로가 깁니다.
그만큼 어렵기도하구요.

아래는 본국검 총도입니다.
밑의 본국검 영상과 비교하여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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