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권법 중에는 탄퇴 혹은 담퇴라고 하는 계열의 무술이 있습니다.

그 중 유명한 것은 십로탄퇴와 십이로탄퇴가 있는데요.

주성치 주연의 쿵푸허슬에서 마을에 살던 고수 중 한명이 십이로담퇴를 익혔다고 하였던 것처럼 매우 널리 알려지고 유명한 무술입니다. 십로탄퇴와 십이로탄퇴는 일단 전체 동작의 수가 10개와 12개로 차이가 있으나 전반적으로 비슷한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된 차이는 십로탄퇴의 발차기가 십이로탄퇴보다 약간 높고, 고관절 높이로 수평이 되도록 발을 차며 손발이 빠르게 변화하는데 수련의 중점을 두며, 십이로탄퇴는 무릎높이를 넘지 않는 낮은 발차기가 특징적이고 발차기의 힘에 중점을 둔다고 합니다. (보우의 삶과 무예 : 탄퇴에 대하여 참조)

탄퇴는 기본을 다지는데에 매우 유용하여 많은 장권계열의 무술들에서 기본 수련으로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여러 우슈도장에서도 마찬가지로 탄퇴 중 전부 혹은 일부를 사용하여 수련하고 있습니다. 검색엔진에서 탄퇴 혹은 단퇴로 검색해보면 많은 영상과 내용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각각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이고요.

십팔기 역시 마찬가지로, 그 명칭을 단권으로 바꾸어서 하고 있습니다. 단권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탄퇴와 같으며 그 숫자와 내용은 탄퇴보다는 단조롭지만 힘이 있습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단권은 총 8로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그 구체적인 내용은 밑에 보이시는 권법요결에 보면 자세합니다.

권법요결
카테고리 취미/스포츠
지은이 김광석 (동문선,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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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느끼기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단권은 단조롭지만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십팔기라는 무예 자체에서도 똑같이 느끼는 바입니다.


한편 풍륜산장님이 최복규 저 무예십팔기라는 책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지적하셨는데요.

무예십팔기
카테고리 취미/스포츠
지은이 최복규 (초록배매직스,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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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하신 것처럼 중국무술의 많은 내용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풍륜산장님의 글 바로가기) 단권외에도 대련법에도 권추대련, 삼권대련, 삼권권추대련 같은 것이 그렇지요. 하지만 이것들도 우슈에서 있는 것들에 비하여 동작들이 좀 변하여 있습니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기본적으로 같은 베이스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스타일입니다.

탄퇴를 각각의 스타일로 여러문파에서 이용하는 것처럼 십팔기에서는 단권, 대련법을 이용하는 것이죠. 그리고 물론 강기대련처럼 십팔기만의 특색있는 대련도 존재합니다. 권법요결의 내용에 보면 강기대련이 나오는데요. 강기대련을 해보면 십팔기의 커리큘럼에 있는 다른 대련에 비해서 뭔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금방 느끼게 됩니다.

인터넷상에 아는 분들은 알고 있는 것처럼 해범 김광석 선생님은 우슈를 하는 많은 노사분들과 친분이 있고 교류를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말이 많습니다만.. 여기저기 상반되는 이야기도 많고 하니..이런저런 이야기는 않겠습니다^^)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무술도 많은 것들이 오갔습니다. 

탄퇴와 단권의 모습이 바로 무술간의 교류의 단적이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p.s - 앞서 링크한 풍륜산장님의 글에서 말씀하신 "중국무술 십팔기도장이라는데서 소림권말고 조선십팔기를 배우고 가르쳤는가, 조선십팔기를 가르친 도장이 있었는가, 거기서 무엇을 배우고 가르쳤는가 이러한 몇가지 기본적 의문점"  설명해보면,

제가 알기로는 해범 선생님의 십팔기도장에서는 중국무술인 쿵푸와 함께 조선의 십팔기를 배우고 가르쳤습니다. 그곳에서는 수련생에 따라서 여러가지 다양한 중국권을 익히기도 하였으며, 중국권 책을 수련생이 가지고 오면 이에 대해서 해범선생님께서 풀어서 가르쳐주셨다고 합니다. 또한 십팔기보존회에서 현각권이라 명명한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을 가르치실 때에는 이것은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으로 우리나라의 권법이다라는 것을 항상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중국권법이외에도 선생님의 문중에서 익히셨던 무예도 있으셨다고 하며 이것과 현각권은 구별하여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상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7번째 이야기 입니다.
저번 6번째 등패와 낭선을 소개함에 따라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중 찌르기의 무예가 완결 되었습니다.

예전에 무예도보통지라는 책을 설명하면서 무예도보통지는 십팔기를 3가지로 구분하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찌르기, 찍어베기, 치기 의 세 종류였는데요.
찌르기는 창류, 찍어베기는 검 혹은 칼, 월도 등이고요, 치기는 권법과 곤봉 편곤의 류입니다.
그래서 찌르기는 이제 다 소개하였고요.
드디어 칼입니다.

칼이라고 하니 좀 품위가 없군요.. 도검류? 검술?
여하튼 찍어베기의 무예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칼을 사용하는 무예가 매우 많이 있습니다. 그 분량도 총4권 중 2권과 3권의 두권을 차지하고 있죠.
사실.. 이미 전 편에서 등패를 통해서 이미 찍어베기의 무예가 소개되었습니다.
등패는 사실 방패이지만 요도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무예도보통지 내에서 찍어베기 무예의 분류 중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하튼 이번에 소개해드리고자 하는 것은 예도입니다. 본래의 명칭은 단도(短刀)였다고 합니다.
혹은 조선세법이라고도 합니다.
조선세법이라고 하는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때에 척계광의 기효신서와 모원의의 무비지를 많이 참조하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중 모원의의 무비지에 이러한 말이 나옵니다.
"옛날의 검은 전투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당태종 때에는 검사가 1천명이나 있었다. 지금은 그 법이 전하지 아니하고 단간잔편 가운데 결가가 있으나 그 설명이 자세하지 못하다. 근래에 호사자가 있어서 조선에서 그 세법이 구비된 것을 얻었다."
이렇게 말하며 모원의는 그 세법 24가지를 조선세법이라 명명하여 무비지 검편에 적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를 만들 당시 조선은 이 조선세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때문에 조선에서도 진실로 조선에서 중국에 전해진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해 받았다는 사람이 말했으니 아마도 조선에서 간 것이 맞겠죠?
이 때문에 이 예도를 조선세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예도보는 이 때문에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예도보는 무비지의 검편에 조선세법을 다시 그려서 24세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예도의 경우 투로의 형태가 아닌 각각의 세의 나열이라는 형태로 적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원 무비지에는 없는 4가지 세인 태아도타세, 여선참사세, 금강보운세, 양각조천세,
를 더하여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 총도와 총보의 경우에는
앞서 예도보와는 달리 투로형태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도보에 나와있는 28가지 세를 전부 사용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해범 선생님의 무예도보통지의 무예 중 칼류를 해제한 본국검에서는
본국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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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광석 (동문선,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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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도보는 조선세법24세라는 표현으로 해제하시고
예도총보를 예도라는 이름으로 2가지로 나누어서 해제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이 두가지 모두 예도라는 이름으로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도 총도입니다.


다음의 영상은 십팔기보존회에서 조선세법의 24세를 연결하여 시연한 것입니다.



그 다음 영상은 EBS 다큐프라임 영상무예도보통지에서 예도총도를 재현하는 장면입니다.


아 그리고 이 무예도보통지의 예도편에서는 당시의 칼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전에 장창에서 그랬듯이 이 예도는 환도(요도)를 사용하는 첫 종목이기 때문에 칼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철에 대한 내용이지요.
옛날의 칼과 철의 재련법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이 부분을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예도편이었습니다.
무예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무술, 무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데
"무기 쓰기, 주먹질, 발길질, 말달리기 따위의 무도에 관한 기술" 로 정의되어 있다.

격투기의 경우는 "두 사람이 맞서 격투를 벌여 승패를 가리는 경기. 유도, 씨름, 권투, 레슬링 따위가 있다." 라고 되어 있다.

호신술은 "몸을 보호하기 위한 무술. 태권도, 유도 따위가 있다."

사전적 정의들을 보면 호신술은 무예의 하위개념처럼 나와있다. 그리고 격투기는 무예와는 별도로 따로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예를 보면 유도처럼 우리가 무예라고 생각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이처럼 각기 다르게 정의하고 있지만 밖으로 표출된 현상들을 보면 "공격과 방어의식이 있는 동작을 통하여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활동"으로 세가지 모두 동일하다.

이 세가지의 차이는 우선 목적에서 차이가 날 수 있을 것이다.
격투기와 호신술은 그 정의에서 나온 것처럼, 격투기는 경기가 전제되어 승패를 가리는 데에 그 목적이 있고 호신술은 몸을 보호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무예의 경우, 기본적으로 상대를 살상하는데(무력화하는데)에 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 의미가 점차 퇴색하고 수련과정을 통하여 정신적인 수양이 주된 목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목적의 차이는 무예와 격투기, 호신술의 차이를 명확히 하는데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것의 차이를 밝히는 데에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무예와 격투기, 호신술의 차이를 밝히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무예는 동양이 가지고 있는(무예라는 것은 전세계에 있었겠지만..) 대표적인 콘텐츠 중 하나이다. 이런 무예를 가지고 발전적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학문의 영역에서 무예를 다루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예의 외연을 확실히 하는 것은 무예라고 하는 것을 학문의 영역에서 다룰 수 있도록 공론화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현재의 한국의 무예를 살펴보자.
택견이 전통무예로 지정되어 있다.
택견은 엄밀히 말하여 격투기이다.(전통시대에는 투기라고 불렸던)
그리고 이에 따라 씨름 또한 우리의 전통무예라고 하는 표현이 통용되고 있다.
택견이 무예의 범위에 포함됨에 따라 씨름 또한 무예라고 하는 표현이 가능해 진 것이다. 그렇다면 권투의 경우는 왜 무예라고 하지 않는 것인가? 프로레슬링은?
또한 호신술이 무예의 하위개념이라는 것을 확실히 정의하지 않기 때문에 각종 호신술들이 무예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호신술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체계 없이 Case by Case로 하나의 상황에 대해서 하나의 기술을 가르칠 뿐이다. 즉, 수학에 비유하면 덧셈, 뺄셈과 같은 기본 원리에서 곱셈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2X2=4와 같은 구구단 외우기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그렇다면 무예와 격투기, 호신술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은 해범 김광석 저, 권법요결의 수련법 장의 서론에 보면 수련형식을 공법功法, 투로套路, 격투格鬪 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구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공법이란 일종의 기초체력단련으로써, 기마식과 같은 보형을 갖추고 단련하는 참공과 호흡을 통한 수련법등을 말한다.
투로란 흔히 품새, 형, 카타, 본 등으로 말하는 것으로 일정한 틀에 따라 개별적인 공방동작을 연결하여 연습하는 것이다.
격투란 일정한 규칙에 따라서 서로 비교하며 승부를 겨루는 단련법으로, 흔히 말하는 약속대련과 자유대련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특히 약속대련에서는 투로에서 연습하는 개별적인 공방동작을 대련속에 함유하여 공격과 방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무예는 공법, 투로, 격투가 조화되어 있어야 한다.
격투기에서 살펴보면, 일단 격투를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공법의 경우 엄밀히 말하면 무예에서 말하는 공법과는 조금 다르다고 하겠다. 하지만 공법 또한 격투기에서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투로를 갖추고 있지 않다. 투로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수학에 있어서 기본 원리에 해당하는 것이다. 무예는 이런 원리를 배움으로써 응용이 가능하도록 수련체계가 형성되어 있는데에 반하여, 격투기에서는 개별적인 상황에 따라 응용된 상황을 숙달시키게 된다. 그리고 그 편이 승리라는 격투기의 목적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호신술의 경우, 격투라고 하기는 부족하지만 호신술자체가 상대가 있음으로 성립하는 것임으로 격투를 갖추어 연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시 투로의 경우에서는 격투기와 마찬가지로 개별적인 상황의 응용기술만 숙달시키는 데에 있다. 또한 호신술의 경우 급박한 상황을 전제하는 경우가 많아서 힘의 차이를 기술로써 메우려고 한다. 물론 무예에 있어서 작은 힘으로 큰 힘을 이기는 것이 그 묘 중의 하나이지만, 호신술의 경우 이러한 성향으로 공법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격투기와 호신술은 무예의 하위개념으로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그 자체가 무예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하겠다. 무예와 격투기, 호신술에 대한 비교를 통해서 무예의 외연이 좀 더 명확해지길 바란다.
십팔기(한국의 전통 무예)(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23)(양장본) 상세보기
최복규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펴냄
우리 문화의 근원을 탐색하고 그 특성을 알아보는『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시리즈. 한국의 전통 문화를 이루고 있는 중요 영역들을 상세하게 다룸으로써, 일반인들이 우리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작은 판형과 풍부한 시각적 자료를 통해 한국의 전통 문화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제23권은 한국의 전통 무예인 '십팔기'를 소개하는 책이다. 십팔기를 중심으로 무예 전통에 대한 개괄적인 검토를 시도하였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한국의 무예 전통
2. 고대의 무예
3. 십팔기의 형성 과정 및 그 내용
4. 근 현대의 십팔기

각 장마다 세부목차가 더 있지만 이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단순히 책의 제목만으로 보면 십팔기라는 무예를 소개하는 책으로 오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십팔기라는 무예 종목 하나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고대로 부터 한국의 무예를 정리한 "한국 무예사" 책이라 하겠다. 무예사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개별적으로 무예단체가 스스로의 전통성 주장을 위해서 정리한 것이 그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십팔기를 소개하고 있지만 무예단체를 넘어서 한국의 무예 전통을 정리하고 있다.

또한 그 내용에서 단순히 무예 역사 뿐만 아니라 무예이론에 대해서도 제시하고 있다. 특히 3장의 내용 중에서 십팔기의 수련 및 비교(이 비교라는 것은 과거 무예의 실기 시험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챕터가 있는데, 이 챕터에서 무예의 시험 규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무예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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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앞마당에서 있었던 십팔기보존회의 십팔기 공연

중 쌍검의 모습입니다.

쌍검은 두개의 칼로써 공격과 방어를 하며 보통의 칼보다 약간 짧은 칼을 이용

빠르고 날렵함을 특징으로 합니다.

무예도보통지의 원 쌍검 동작을 좀 더 늘려서 시연하고 있습니다.

 



시연자 십팔기보존회원 허대영

선진한국체육연맹(SFOMA) 경기지부 창립총회에서 있었던 십팔기 시범 중 권법 시범입니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려있는 권법은 혼자서 투로를 진행하다가 마지막에는 대련으로 마무리하도록 되어있으나 십팔기보존회에서는 그 외에도
해범 김광석 선생님의 권법요결에서 혼자서 수련할 수 있도록 투로로 완결하여 수련을 합니다.
권법요결 상세보기
김광석 지음 | 동문선 펴냄
권법도서


권법은 실제 전투에서는 쓰이는 무예는 아니지만 병장기를 다루는 데 필요한 활발한 신체를 얻기 위해서 수련하고 직접 몸을 부딪히는 대련을 통해서 담력을 기를 수도 있었습니다.

시연자 : 십팔기 보존회원 허대영

본 블로그 주인장입니다^^

서울대학교 전통무예연구회의 2008년 1학기 연구발표회에서의 영상입니다.

곤봉은 무예도보통지에는 2인이 서로 대련하는 형태로 수록되어 있으나
대한십팔기협회의 김광석선생님 저, 조선창봉교정, 동문선, 2002
에서 혼자서 수련할 수 있는 투로의 형태로도 연습합니다.
조선창봉교정 상세보기
김광석 지음 | 동문선 펴냄

위의 조선창봉교정에는 곤봉이외에도 무예도보통지에 실려있는 장병기에 장창, 기창, 당파 등에 대한 실기가 수록되어있습니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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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단체들이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를 복원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단체들은 그 무예의 명칭을 십팔기라고 하지 못하고 있다. 십팔기가 전승되고 있었다고 해도 뜻있는 이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무예를 바탕으로 복원을 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복원을 내세우며 전통을 내세우는 이들이 가장 기본적인 명칭에서 조차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박금수, 조선의 공식무예의 명칭 '십팔기'에 대한 고찰, 한국체육학회지 46권 제5호, 2007.

  위의 논문에서 말하는 대로 '십팔기'란 조선의 공식무예의 명칭이었다. 복원이냐 전승이냐, 서로를 비난하기 전에 기본적인 명칭부터 명확하게 써야할 것이다. 또한 아래의 글에 써있는 전승계보의 진위에 대해서 확인할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는 바, 그 실기로써 승부하는 것이 무인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하는 본문의 일부이다.

십팔기의 전승계보

...... 십팔기가 이 땅에 다시 나타나게 된 것은 해방과 6.25가 한참 지난 69년, 김광석 선생이 우리나라 최초로 십팔기도장을 열면서였다. ..... 해범(海帆) 김광석(金光錫) 선생이 어린 시절, 그의 가족들은 전쟁에 광분하던 일제 말기 세상이 혼란스러워지자 한동안 지리산 골짜기 문암(門岩: 장흥군 위치면, 화순군 도암면, 나주군 다도면의 경계 지역으로 원래부터 마을이 있었던 곳이 아니라서 정식 지명은 아니다.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이란 곳으로 들어가 살고 있었다
 더불어 그 집안(道家)의 내력으로 인하여 수양에 필요한 여러 가지 공부를 하던 중 양생법과 간단한 무예를 연마하여야 했다. 그 시절에는 그의 집안과 왕래하던 여러 수양하는 지인들이 왜경과 일본군을 피해 그곳으로 숨어 들어왔었다고 한다. 그 사람들 중에는 훗날의 6.25 피난 시절 부산에서 만나게 되는 오공(晤空) 윤명덕(尹明德) 선생도 있었다.

...... 오공 선생의 생존 연대는 정확치 않으나, 해범 선생이 16세 때 부산에서 다시 만났을 무렵 환갑을 넘기셨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미루어 1890년 전후에 태어나신 걸로 짐작된다. 당시 오공 선생은 항상 일본군과 왜경을 피해다녔던 분으로 기억되고 있다.

......(오공선생은) 낮에는 먹고 살기 위해 뛰어다니고, 늦은 밤과 이른 새벽이면 어김없이 해범 선생을 데리고 뒷산(천마산)으로 올라가 무예를 익히게 하였다. 그때마다 오공 선생은 항상 ‘십팔기’를 말씀하셨지만 당시에는《무예도보통지》란 책도 없었으며, 오직 구전심수(口傳心授)로만 무예를 익혔다고 한다. 그곳에서 십팔기를 비롯한 무예 전반에 대한 이론과 실기, 그리고 수양에 필요한 여러 가지 양생법과 한약학을 반강제로 가르치셨던 것이다.

  십팔기 전 종목을 모두 익히지는 못하고 <예도> <본국검> <장창> <장봉> <월도> 등은 이름과 함께 기억하지만, 일부 종목인 <낭선> <죽장창> 등은 무기도 없었을 뿐더러 별도로 익힌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십팔기 이외에도 검법, 창법, 봉술 등 갖가지 기예와 무예이론들을 가르치고 알려주었으나, 당시의 형편이 여의치 않아 기록으로 남길 수도 없었고, 또 어린 마음이라 귀하게 생각지도 않아서 흘려들은 것도 많았다고 한다.

  훗날 기억하기로 당시 십팔기를 비롯해 포승줄 감아 던지는 것 등을 보여주셨던 것으로 봐서 당신께서 젊은 시절 잠시 구한말 무관을 지냈거나, 무관을 지낸 분으로부터 기예를 배우지 않았나 짐작된다고 하였다. 집안 내력에 대해서는 외가의 먼 친척뻘이 된다고 해서 어렸을 적에는 ‘외삼촌’이라고 편하게 불렀던 기억 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수년 동안 지금은 대부분 타계한 여러 무예인들과 왕래하며 서로 교유하였다. 마땅히 수련할 만한 장소가 없어 지인들의 태권도장이나 중국무술도장을 빌려 운동을 하던 해범 선생은 1969년 우리나라 최초로 십팔기도장을 개원하여 후학들에게 무예를 가르치기 시작해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십팔기’란 이름은 오공 선생의 말씀에 따라 붙였는데, 나중에 《무예도보통지》를 구해 보고서야 스승의 가르침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전에 별도로 익히지 않았던 몇가지 장병기예들도 책을 보자 바로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서울역 바로 아래에 십팔기도장을 열어 후학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무예계의 어느 누구도 ‘십팔기’를 우리 무예로 인정해 주지도 않았을 뿐더러 아예 우리 것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다. 심지어 중국 무술로 오해하고 무시하기까지 했다. 물론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쿵후(工夫)가 광풍처럼 유행하던 터라 대부분 중국무술이 아니면 배우려 들지를 않았다.

..... 그러다가 70년대 중반, 일부 중국무술도장들과 합기도인들이 함께해서 <대한쿵후협회>를 만드는 것을 보고, 해범 선생은 십팔기의 보존을 걱정하여 사회단체 <대한십팔기협회>를 설립(76년 결성, 81년 등록)하였다. 이때 선생님을 따르던 약 절반의 중국무술도장들도 함께 대한십팔기협회에 가입했었는데, 이로 인해 중국무술도장에서 쿵후를 익힌 사람들에게도 한동안 대한십팔기협회의 단증이 발급되었었다. .....이때문에 예전에 쿵후를 익힌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도 십팔기를 했다고 말하게 된 것이다. 모두가 역사의 굴곡과 전통의 단절로 인해 야기된 혼란이었다.

  이후 약 15년 동안 나름대로 ‘십팔기’를 지키고 전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세인들의 잘못된 인식과 무관심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던 해범 선생은 1983년 그만 도장 문을 닫고 수양 생활로 접어들어 버렸다. 그리하여 십팔기는 몇몇 제자들이 운영하는 도장에 의해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었다. 그러다가 1985년 당시 문화재위원이었던 심우성(沈雨晟) 선생을 만나면서 해범 선생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다.

  심우성 선생은 민속학자로서 오래전부터 우리의 전통 춤을 연구하기 위해 전통 무예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출판업자로 하여금 규장각에 있는 《무예도보통지》를 처음으로 영인케 했었다. 그리고 민속답사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닐 때마다 ‘십팔기’를 하는 사람을 수소문했으나 만나지 못하다가 1985년에서야 우연히 필자와의 인연으로 해범 선생을 만나게 된 것이다.

  십팔기의 전승 계보와 실기를 확인한 그는 해범 선생에게 그 실기를 세상에 공개할 것을 끈질기게 요구하였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무예도보통지 실기해제》(심우성 해제, 김광석 실기, 1987, 東文選)라는 책이다. 그리고 그해 12월 20일, 한국민속극연구소 주최로 서울 동숭동의 ‘바탕골 예술관’에서 출판기념회 겸 최초의 십팔기발표회를 공개적으로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우리나라에 비로소 전통 무예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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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십팔기가 보급되어 오다가 2000년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전국적인 전통무예 붐이 일어나게 되었다. 더불어 선생의 저서와 공연을 보고 십팔기를 흉내내는 유사 십팔기 단체들도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예전에는 십팔기를 중국무술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던 이들조차 십팔기와 《무예도보통지》를 들먹이며 정통성을 주장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분명한 사실은 이 모두가 해범 선생이 일평생 십팔기를 지켜오고 보급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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