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이미 EBS에서 제작한 다큐 <영상무예도보통지>에 대해서 알려드린 바가 있습니다.
바로 이거죠 ---->> (2008/07/20 - [무예/십팔기] - EBS 다큐프라임 "영상 무예도보통지" 1부 - 무의 시대 다시보기)

위의 영상은 다큐의 내용 중에 일부를 잘라놓은 것입니다.
다큐멘터리 전체를 다시보고 싶으시면 전에 써놓은 글의 링크를 통해서 이동하시면 됩니다.^^
위의 장면은 십팔기보존회의 시범단장 및 시범단이 수고하여 주셨습니다.
영상의 컨셉은 보시는 것과 같이 십팔기를 익힌 고수 1인과 자객 3인의 결투입니다.
십팔기를 익힌 고수는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할 때 실기를 담당하였던 백동수를 모델로 하였습니다.

월도를 들고 백동수역할로 연기해주신 분이 시범단장님이시며,
창, 왜검, 쌍검을 들고 자객 역할을 하신분들은 십팔기보존회의 시범단원분들입니다.

십팔기보존회에서는 십팔기를 수련하면서 무예도보통지에 나와있는 여러가지 기예를 이용하여, 합을 짜서 겨루는 교전을 연습하고 또한 공연을 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교전은 월도와 창이 겨루는 월도창교전, 그리고 창과 칼이 겨루는 창검교전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것은 기창들 입니다.
기창은 한글로 하면 두가지 모두 기창이지만
깃발이 달린 창인 旗槍과 말을 타고 운용하는 騎槍, 즉 마상창이 있습니다.

둘 모두 창류로서 무예도보통지 권1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권1의 순서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장창 죽장창 기(旗)창 당파 기(騎)창 낭선 입니다.

이 순서를 보면 창과 같은 류를 설명함에 있어서 장창 죽장창 기(旗)창 당파를 설명하고
그 뒤로 기(騎)창 을 설명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다른 마상기예도 마찬가지 인데요.
월도를 설명한 뒤에 마상월도를
쌍검을 설명한 뒤에 마상쌍검을
편곤 다음에 마상편곤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뒤에 말씀을 드리겠지만 다른 기예들과는 달리 마상기예에는 총보와 총도가 없습니다.

이는 마상기예들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독립된 형태가 아닌 각 병기의 운용법의 하나로 파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기(騎)창의 뒤에 낭선을 서술한 것입니다.
낭선은 다른 창류와 달리 낭선은 척계광에 의해서 고안된 병기로 창류와는 그 기원이 다르기에 따로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낭선편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기창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깃발을 단 창인 기창旗槍입니다.
기창은 장창에 비하여 길이가 짧습니다. 자루가 9척 창날이 9치로 되어 있는데요.
이는 주척으로 계산하면 대략 2미터가 조금 넘는 길이입니다.
때문에 이 기창을 단창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본래 기창은 군대의 진중에서 무기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사극을 보면 지휘관이 목소리를 통해서 지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물론 우리나라의 사극에서 처럼 소규모의 전투만을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외국의 영화같은 것에서 보면 북과 같은 소리 그리고 깃발로써 군대를 지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좀 아쉽군요;;; 우리나라도 그런 멋진 전투씬이 만들어지면 좋을텐데요..)
이처럼 기창은 명령을 하달하고 응답하는 전시 군령전달체계로서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왕의 주위에서 의전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구요.

하지만 조선에서는 기왕에 기창에도 날이 달려있음에 그것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하여 보를 만들어서 전하고자 기창의 연습법을 만든 것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 메는 호미와 곰방메도 병기가 된다. 지금은 별도로 하나의 창으로 갖추어서 그 세법을 익힌다."고 하였습니다.
즉, 당시 우리나라에서만 전하는 독창적인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그 세명에서도 특이한 현상이 보입니다.
앞서 "2008/10/10 - [무예/십팔기] -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3) - 장창, 죽장창" 에서 죽장창을 세명을 설명했을 때에
진왕점기와 한신마기라는 세가 나왔었습니다.
하지만 기창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진왕마기와 한신점기라는 세가 보입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이것도 기창이 우리나라에서 만든 독창적인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명칭을 바꾸어서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실 진왕마기 혹은 한신점기에서 동작상 중요한 것은 마기와 점기라고 생각됩니다.
마기의 마자는 磨(갈다)이며, 점기의 점자는 點(점찍다)입니다. 기자는 둘다 旗이구요.
이는 죽장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왕이나 한신은 진나라의 왕, 그리고 한신은 우리가 잘 아는 그 한신을 뜻합니다.
결국 동작상에서는 비슷한 세이지만 표현을 일부러 달리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다음은 기창의 총보의 그림입니다.



다음은 2008.10.5 경기도 광주왕실도자기축제에서 있었던 십팔기보존회의 기창영상입니다. 위의 기창 총보와 비교하여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예도보통지의 기창보와 그 후에 창의 기법을 더하여 시연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음은 마상창, 기창입니다.
기창편의 내용은 기창에서 사용하는 창에 대한 설명과 기창의 무과시취제도를 설명하고 있고, 그 뒤로 기창보와 기창교전보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총도나 총보의 형태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와 같이(채색은 안되어 있습니다만;;)
각 세에 해당하는 그림만이 있을 뿐입니다.

기창에서 사용하는 창은 보장창과 같은 크기라고 합니다. 즉 15척, 약 3.5미터 정도입니다.


기창교전보의 경우에는 두명의 마병이 서로 창을 부딪히고 있는 한장의 그림에 모든 설명이 다 기록되어 한페이지로 설명이 끝납니다.

본래 무과에서 기창을 시험할 때는 騎芻라고 하여 세개의 추인(허수아비인형)을 찌르고 돌아오는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무예도보통지에 나와있는 기창보는 그와 다릅니다. 하지만 연습하는 법이기에 싣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땅위에서 하는 것에 비해 마상에서 하는 것은 단순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창은 매우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세명을 보아도 쉽게 알수 있는데요.
첫 시작하는 세인 신월상천세 이외에는
좌전일자, 우전일자, 좌후일자, 우후일자 와 같은 형태입니다.
좌우전후는 방향을 일은 一이고요. 자는 刺(찌르다)입니다.

기창교전보는 서로 150보떨어졌다가 서로 달려서 창을 한번 부딪히고, 다시 돌아서 부딪히고를 세번한다라고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는데요.
실제 기록에서 보면 기창교전은 매우 위험하여 부상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글로 보면 간단할 것처럼 보이지만요;;;

그럼 이상으로 기창편이었습니다.



11월 1일 토요일 경기데일리안과 (사)한국등산연합협회 주최의
제1회 남한산성 등산문화축제에서 십팔기 시범공연이 있습니다.

등산문화축제의 자세한 일정은 위의 이미지와 같습니다.
(관련기사 보러가기)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국난이 있을 경우 국왕은 강화로 피하고 세자는 남한산성으로 가서 견제하는 역할을 하였다고합니다. 이렇듯 조선시대 군사적 요충지였던 남한산성에서 십팔기가 재현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십팔기 보존회에서 시범단 연습생을 모집합니다.
다음은 십팔기 보존회 홈페이지 (http://sippalki.com) 게시판의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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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팔기보존회 시범단에서 연습생을 모집합니다. 연습생이 되시면 십팔기 시범단 훈련에 참가할 수 있으며 십팔기의 기초와 고급기술까지 무상으로 교육받을 수 있습니다.

십팔기 시범은 최소한 3년간 열심히 수련하여 실력을 인정받은 후에야 정식으로 참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종목의 경우 1년정도 수련 후에도 참가가 가능합니다.

연습생으로 선발되신 분들은 매우 자세하고 세심한 지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습생은 최소 주3회 수련에 참여해야 합니다.

또한  십팔기보존회의 시범공연에 의무적으로 참석하여 공연진행에 도움을 주셔야 합니다. 물론 이때 소정의 수고비가 지급됩니다.

항상심을 갖고 꾸준히 수련하면 누구나 정식 시범단원이 될 수 있으며 향후 진로는 상설시범공연단, 해외파견사범 등 다양한 진로가 열려있으니 한국전통무예의 발전에 큰 뜻을 품운 젊은청년들의 많은 지원바랍니다.

현재 십팔기보존회 시범단은 월~금, 오전 11시-1시, 창덕궁 옆 원서공원, 우천시에는 인사동 십팔기전수관에서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문의 : 박금수 사무국장(010-4734-1871), gspark187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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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시연단 연습생 이외에도 십팔기나 기공등을 익히고 싶으신 일반회원에게도 전수관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창은 "무예의 왕이다"라고 하죠
이 말은 무예도보통지의 곤봉편에 나와있습니다.
앞서 연재했을 때는 곤봉과 관련한 말이 아니라서 말하지 않았습니다만
"世傳長槍固藝中之王" 이라고 쓰며 그 뒤에 창 또한 무예중 으뜸이다라고 쓰고 있죠.
그리고 그 말에 이어서 무예계의 속담(諺)에 이르길 '천번 내려치는 것이 한번 찍어 치는 것(찌르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을 써놓았습니다. 그만큼 창이라는 병기가 중요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듯이 장창은 무예도보통지의 가장 첫번째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4권으로 이루어진 무예도보통지의 첫번째 책을 장창, 죽장창, 기창(旗槍), 당파(삼지창), 기창(騎槍), 낭선의 창류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장창도 여타 기예처럼 일단 처음에 중국식의 창과 우리나라의 창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왼쪽이 우리나라의 형태&#13;&#10;오늘쪽이 중국의 형태입니다.



중국식과 우리나라식의 차이는 잘 보이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식에는 창날에 혈조(날의 가운데 홈이 파여있는 것을 혈조라 합니다.) 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밑에 둥근 원판인 석반이 있다는 것과 창의 자루 끝에 뾰족한 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혈조라는 것은 요즈음의 대부분의 도검에서 보입니다. 그 기능에 대해서는 확실한 정설은 없지만 찔렀을 때 날을 다시 뽑기 용이하기 위함이라고 흔히들 알고 있습니다.
이 석반 또한 창날이 과도하게 박힘을 방지하는 용도이기도 하며, 특히 이 석반의 끝을 날카롭게 갈아서 적들이 창자루를 잡지 못하도록한다고 무예도보통지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장창의 길이는 1장5척으로 주척으로 환산하면 3미터가 좀 넘습니다.
위의 그림에 장창옆에 써있는 글은 장창을 만드는 법인데요.
창의 자루끝부분은 손으로 잡았을때 남음이 없도록 꽉차야하고 중간에서 날부분으로 갈수록 점차 가늘어져야 한다고 써있습니다.
(같은 힘이라면 접촉면이 작을 수록 그 충격력이 크기 때문이겠죠?)

그 뒤로 장창편에 나오는 내용의 많은 부분이 장창을 만드는 나무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 이유는 장창이 진영에서 가장 주된 공격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견고하고 잘 만들어야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여튼 어떤나무를 사용하는 지에 대한 내용말고는 창은 양가창이 이화창이라 하여 유명하다라는 내용을 싣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창을 쓰는 법으로 유명한 것은 사가창, 마가창, 금가창, 장비신창, 오현신창, 괴돌창, 괴도창, 아미창, 월창, 지설창등이 있다고 합니다.
장비나 아미 같은 것은 많은 들어본 말이네요. ^^ 역시 장비하면 창이죠 ㅎㅎ

이 이화창은 창에서는 매우 유명합니다. 무예도보통지에도 그 내용을 여럿담아놓았는데요
왕명학이라고 하는 명나라 만력14년에 무과에 급제한 장수가 말하길 "장창의 법은 양씨에게서 비롯되어 이화라 하였는데 천하가 모두 숭상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화창에 대해서 색다른 기록도 있습니다.
왕사의 라는 사람이 남긴 기록인데요. " 이화창이란 이화 한통을 장창의 머리에 매어 달아서 적을 맞아 싸울때에 이화통을 한번 발사하면 몇장이나 멀리 날아가서 상대에게 그 약이 닿으면 즉사하고 창은 여전히 적을 찌를 수 있으니 곧 제일가는 화구가 된다" 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척계광이 논한 창세는 이화창이긴 하나 화구는 아니라고 하네요.

전에 권법의 경우 송태조 장권32세에 기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장창의 경우 장창24세라고 흔히 유명하데요.
1598년 무예제보의 편찬을 맡았던 훈국랑 한교가 명나라 장수들을 통해서 12세만을 알 수 있었고 스스로 연구한 끝에 나머지 12세도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그 결과 장창의 경우 전보와 후보로 나뉘어서 각각 12세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죽장창의 경우는 특별히 비교설명이 없습니다.
실제로 죽장창의 경우 그 길이가 20척으로
주척으로 해도 4.5미터 이상입니다.

이 정도 길이면.. 특별히 어떠한 것을 더 첨부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장창은 무예도보통지에 보면 "지금은 전죽(통대나무)위에 얇은 칼날을 시설하여 사용"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통대나무를 사용한 경우 그 강도가 약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척계광은 나무자루로 바꾸어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죽장창은 견고하고 날카로우며 그 허리에 탄력이 대단히 강했다고 합니다.




총보를 보면 태산압란세 이후 진왕점기세 3회 금룡파미세 3회 단봉무풍세 3회 한신마기세 3회 이후 백원타도세 철번간세를 한번씩 하고 금룡파미 단봉무풍 한신마기 백원타도세를 연달아 하고 마치도록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같은 동작을 여러번 반복하는 것을 보면 긴 죽장창을 이용하여 힘을 기르는 것이 주목적의 하나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당시 사람들의 평균신장은 150정도 되었을까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리 크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자기 신장의 2-3배가 되는 무기들을 들고 수련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굉장히 위용있었을 것 같습니다.



위의 영상은 2008.5.4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있었던 십팔기보존회의 장창 공연입니다.
장창의 전보만을 각색하여 시연하였습니다.


전에 소개했었던 제2회 전국활쏘기 백일장의 개막행사에서
십팔기 공연이 있었습니다.
위의 영상은 그 중 동아일보에서 취재했던 것 같습니다.
기사 링크


위 영상은 대한궁술원에서 편집한 영상입니다.

국궁과 십팔기가 만나는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지난 10월 3일 개천절, 오후3시에 서울대학교 노천강당에서 제21회 한국전통무예 전국대학생연합 연구발표회(이하 전국발표회)가 열렸습니다.



사실... 좀더 일찍 알려드리고자 했었는데;;;
요 근래 조금 바빠서 그만;;;

여하튼
현재 서울지역과 대구지역에 대학동아리가 10개정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서울대, 연세대, 서강대, 안양대, 대구대, 대구한의대, 대구가톨릭대, 영남대, 경일대, 계명대, 경북대 뭐 이정도 입니다.

그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1년에 한번씩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전국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는데요.
올해는 서울, 서울대에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10여개 학교에서 50여명의 참가자가 1년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모두 앞에서 선보였습니다.
발표회에 앞서서 서울에 있는 오금초등학교의 오금십팔기군(특기적성활동입니다)의 특별무대가 펼쳐졌었고요. 어린아이들의 동작들이 참으로 귀엽더군요^^

6시경 발표회가 모두 끝나고 저녁식사 후에는 '십팔기인의 밤'이라 하여 우이동으로 이동후 뒷풀이를 하였습니다.

이 전국발표회는 겨레사랑무예동우회의 주관으로 이루어졌는데요.
겨레사랑무예동우회(이하 겨무동)은 바로 동아리 졸업생들의 모임입니다.
졸업한 선배들의 물심양면의 지원과 학생들의 노력으로 올해에도 행사를 잘 치렀습니다.

행사 사진과 영상이 정리되면 나중에 글을 다시 올리도록하죠^^
내년이나 후년에는 미리미리 글을 올릴테니 관심있는 분들은 오셔서 감상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 9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경복궁에서 대사례의 재현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대사례라는 것은 왕이 주관한 활쏘기 행사를 말합니다.
예로부터 활쏘기는  단순한 무예기술이 아닌 몸과 마음을 닦는 수단으로 여겨졌습니다. 활쏘기의 성격이 군자의 성질과 닮은 것이 있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反求諸身, 不怨勝己 라고 하는 것이 모두 활쏘기와 관련된 용어였습니다.

하여튼 이번에 재현된 대사례는 조선시대에 있었던 6차례의 대사례중 1743년(영조19)에 영조임금이 50세가 되던해에 있었던 대사례를 재현한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대사례의 재현은 훌륭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활을 쏠때 관객들의 반응도 매우 좋았고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의례의 진행속도가 너무 느려서 아쉽더군요.
우리나라의 의례를 재현하는 모습을 보면 음악의 템포가 느려서 그런지 매우 천천히 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대사례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런데 보면서 저렇게 천천히 걸어올 필요가 있을까? 실제도 저렇게 느리게 행사를 진행하였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활을 쏠 때 이외에는 조금 지루하긴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 특히 외국인들이 지켜보는 것을 보니 우리 것이 가능성있는 컨텐츠임은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의례에 사용되는 창과 같은 것들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물론 실제 병장기를 만드는 것은 힘들겠지만, 적어도 좀 병장기의 위용이 드러나도록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관객들이 관람하기에 조금 불편하게 객석을 배치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활을 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고,(물론 스크린으로 따로 비춰주긴 했습니다만..)
사진을 찍을만한 포인트도 별로 없더군요... (비록 제가 카메라가 없긴 했지만;;;)

여하튼 앞으로도 이러한 행사가 자꾸 발굴? 재현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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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초에 국립민속박물관이 주최하고 황학정에서 열렸던
활쏘기 백일장이 올해에도 황학정에서 개최됩니다.

활쏘기 백일장은 다른 궁도대회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데요
보통의 궁도대회는 한사람이 3순(15발)을 쏘아서 몇번 맞추었느냐로 평가합니다.
그리고 한사람에게 한번의 기회만 있지요.

하지만 활쏘기 백일장의 경우 예선과 본선으로 나누어서 예선에는 몇번이고 참전할 수 있습니다. 다만 출전비용3000원을 매번 지불해야합니다.
그리고 한순만을 쏘아서 그 사대(활쏘는 곳을 말합니다. 한번에 7명까지 설 수 있습니다)에서 가장 많이 맞춘 사람은 승자가 되어 본선으로 올라갑니다.

예선이 끝난 후 승자끼리 이러한 경기를 반복하고 나중에 32강부터 토너먼트로 진행하게 됩니다.

작년엔 활쏜지 얼마 안되었지만 정의 어른들께서 나가서 쏘라 하셔서.. 가서 한발도 맞추지 못하고(불(不)을 쏘았다고 합니다.)...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나갈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불은 쏘지 말하야 할텐데..

자세한 개최요강은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http://www.nfm.go.kr/)에서 소개마당에 박물관 새소식에 보시면 나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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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는 무예에 근본이 되는 권법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럼 다음차례는 무예의 기본이 되는 곤봉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책에 써있는 바대로 하면
"곤은 모든 병기를 이용하는 세는 곤법의 외형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입니다.
즉 권법은 무예를 함에 있어서 몸을 움직이는 데이 근본이 되는 것이고
곤봉은 병장기를 익힘에 있어서 그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번째로 소개하는 기예를 곤봉으로 선택하였습니다.
참 요즘 보니 이 곤봉을 곤방으로 부르기도 하던데요.
그것은 무예도보통지에 보면 곤봉의 棒자가 당시 음이 방이었다고 표현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현대에는 이 글자를 모두 봉이라 읽으니 곤봉이라고 읽고 써도 될것같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곤방보다는... 곤봉이 어감이 좋아서;;;;

일단 무예도보통지의 곤봉편을 보면
다른 편과 마찬가지로 곤봉의 그림이 나옵니다.
헌데 이 그림은 우리가 아는 곤봉의 그림과는 달리 날이 붙어있습니다.
마치 창과 같은 형태이죠. 그것은 곤봉을 군중에서 사용하기 위해서 작은 날을 달아놓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척계광대에 이르러서 날을 달은 것 같다고 무예도보통지의 저자들은 써놓고 있습니다.

여튼 곤봉의 그 길이가 7척이고 무게는 3근이라고 합니다.
이때 척은 영조척과 주척이 있는데.. 영조척은 30.3cm 주척은 23.1cm 입니다.
어떤 것이 맞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목공에는 주로 영조척이 쓰였다고 하는데... 그림의 비율로보면 주척이 더 맞는거 같기도 하고.. 여튼.. 제가 실제 유물을 보지도 못하였고.. 나무로된 봉이 유물로 남아있을 것 같지도 않고.. ㅎㅎ

다음으로 <병장기> 라는 책에 곤봉의 제도에 대한 내용을 적어놓습니다.
그 책에는 곤봉에는 6가지 제도가 있는데 모두 견고하고 무거운 나무로써 만든다고 써놓았다 합니다.
길이 4-5척에 윗부분을 철로 싼 것을 가려봉이라 하고
머리부분에 날을 달고 아래에는 거꾸로된 쌍갈쿠리로 만든 것을 구봉
날은 없고 철조를 단 것을 조자봉
윗부분에대 곧은 침을 심어 이리 어금니처럼 한 것을 낭아봉
봉의 양쪽 끝을 모두 큰것으로 낭아처럼 한것을 저봉
도리깨같은 류는 철연협봉이라 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곤봉은 다른 병장기로 변용하여 사용하기도 하였기에 더욱 병장기의 기본이라 하였던 것 같습니다.

다음 내용은
권법편에서도 나왔던 것처럼 곤봉과 같은 뜻으로 고전에 전해지는 한자들을 밝히고 있습니다.
수(), 정(), 그리고 한조의 관명인 집금오의 금오 등이 모두 봉을 뜻하는 글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모원의는 곤과 봉은 같은 것이라 말합니다.
흔히 전하기를 곤은 한쪽끝이 다른 한쪽 끝보다 굵은 것을 곤이라고하고
양쪽의 크기가 같은 것을 봉이라고 한다고 하죠.
하지만 그 용법이 큰 차이가 있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바로 정종유의 <소림권법천종> 중 파곤제1로보 부터 파곤제6로보까지 싣고 있습니다.
이는 모원의의 무비지를 참조하면서 파곤만을 뽑아 넣은 것 같습니다.
이 파곤편은 서로 대련하는 연습법입니다.
실제 무예도보통지의 곤봉편도 그 보는 대련하는 법만 있습니다.
그에따라 소림곤법천종의 내용중에서도 대련부분만 이용한 것 같습니다.

여튼 곤봉하면 역시 소림곤이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나봅니다.^^
마지막으로 그 내용이 나오는데요
그 내용을 살펴보면

임진왜란때 중국의 장창, 우리나라의 편전, 일본의 조총이 천하에 유명해졌다.
세대로 전하여 내려오는 장창은 실로 무예중 왕이며 곤 또한 무예중 으뜸이 된다.
곤은 창의 반단(半段)인데 척씨가 날을 덧붙였으니 창과 곤은 표리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병기를 운용하는 신수족의 세는 곤법의 외형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때문에 모원의도 곤을 모든기예의 종법으로 삼았으며 "곤은 소림을 종이라 하고 소림의 설법은 정종유(소림곤법천종의 저자입니다.)의 천종보다 상세한 것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소림곤법천종의 내용을 담았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요즘에는 흔히 중국은 창, 우리나라는 활, 일본은 칼 이라고 널리 퍼져있는데요. 임진왜란을 겪은 후의 조선에서는 조총에 호되게 당하기는 한 모양입니다.
일본의 조총을 명시한 것을 보니 말이죠.

이제 그 다음 내용은 실제로 곤봉을 연습하는 그림과 설명입니다.
이 곤봉보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두사람이 대련하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그 때문에 총보와 총도가 다른 기예와는 표현이 다르게 되어있습니다.
(나중에 스캔하던지.. 그림을 따로 올리도록하죠 ㅡㅜ)

어떻게 다른가하면...
곤봉보는 약속대련의 형태인 만큼.. 같은 동작을 반복하여 시행합니다.
그래서 곤봉총보는 반복을 끊어서 하나의 작은 총보처럼 새로운 줄에 써넣었습니다.
그림을 싣는 총도의 경우에는 반복되는 동작은 모두 제거하고 동작이 다른 14가지 경우의 그림만을 표현하였습니다.(글로 쓰니 역시 설명이 안되는 군요.. 빠른 시일내에 원 그림을 올리도록하겠습니다.)





드디어 곤봉총도와 총보의 그림을 올렸습니다..(늦어서 죄송;;;)
여타 기예의 경우와 총도와 총보가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으시면
2008/09/09 - [무예/십팔기] - 조선시대 무예교본의 완성판, 무예도보통지
위의 글을 보시면 본국검의 총도와 총보가 나와있습니다. 그것과 비교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2008/06/04 - [무예/십팔기] - 십팔기-곤봉(장봉) 영상 
위의 글은 곤봉 영상인데요.
이 영상은 대한십팔기협회, 십팔기보존회에서 연습하는 곤봉보입니다.
무예도보통지와는 달리 개인이 연습하는 투로의 형태도 되어있습니다.
물론 무예도보통지의 원보대로도 수련하기도 하지만...
무예도보통지 원보의 곤봉보는 그 내용이 적기도 하고 기본적인 수들이라... 심심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

여튼 이것으로 일단 곤봉편입니다.^^

가을이 되니 여러지역에서 축제도 많고 공연행사가 많습니다.

10월 첫주에는

10월 1일 수요일은
 충남 보령시에서
제 15회 보령만세문화제가 열리는데요
축제기간 중 십팔기공연이 있습니다.

자세한 일정은
위의 첨부파일을 참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10월 5일 일요일은
경기도 광주시에서 열리는
왕실 도자기 축제에서 십팔기 공연이 있습니다
왕실도자기축제 홈페이지 바로가기
아직 자세한 일정이 결정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전통무예십팔기에 대한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십팔기의 종목들을 하나씩 소개하고자 합니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총 24가지 항목이 있지만 마상쌍검은 쌍검과 함께 설명할 생각이고
종목에 따라 내용이 적은 것은 한번에 설명하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24번 글을 쓰진 않을 것 같군요 ㅎㅎ
또한 제 개인사정상 정기적으로 쓰진 못 할 것 같네요(일단 내용에 대해 공부를 하고 써야 하니... ㅡㅡ;;)
앞으로 쓸 글들은 "박청정주해, <무예도보통지주해>, 동문선" 을 주로 참조할 것입니다.
여튼 그 첫번째 순서로 권법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순서라면 권법은 권4에나 나옵니다.
무예도보통지는 무예의 성격에 따라 순서를 나누었기 때문인데요.
찌르는 무기(刺), 찍어베는 무기(), 치는 무기(擊)의 순서에 따라 편찬했고
권법은 치는 무예로 분류되어 치는 무예의 첫번째로 나옵니다.

하지만 권법은 무예의 기본이고, 또한 아무래도 다른 병장기를 익히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이기에 가장 먼저 소개하고자 합니다.

무예도보통지는 전에 무예도보통지에 대해 설명한 글에서 말한 것 처럼
척계광의 <기효신서>와 모원의의 <무비지>를 주로 참조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무예도보통지에서도 그 두 책에서 몇마디 인용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척계광은 <기효신서>에서
"권법은 전쟁의 기예와는 관련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수족을 활발히 움직이게 하고 지체를 부지런히 하니 처음 배우는 자들이 무예에 들어가는 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모원의는 <무비지>에서
"점획을 분별하여 알고 난 이후에 팔법을 가르칠 수 있고, 안장에 의거하여 지내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 말 타고 달리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권법도 이와 같다고 말하겠다"고 하여 두 책에서 모두 권법은 무예를 하는데에 있어서 기본이 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면 권법은 전쟁에서 바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척계광의 이 말을 모원의도 그대로 인용하였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이런 말들을 서두에 쓰고 있는 것은 권법이 전쟁에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잊지말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는 무예라고 하면 권법은 기본이고 병장기를 꼭 익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권법"이란 무엇인가 논설을 하고 있습니다.
옛 서적에서 권拳이라는 글자가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그리고 권법이라는 뜻으로 쓰인 글자가 무엇이 있었는지 말해주는데요.
<좌전>에 "진나라 군주가 꿈에서 초나라 군주와 치고 받았다(博)" 하여 박이라는 글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때 박博이 곧 권박拳搏이다.
또한 어느 책에서는 변卞이라고도 쓴다. 뭐 이런 식인거죠.
곧 수박이란 권법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당송이래 권법의 역사에 대해 서술합니다.
권법의 기술에는 외가와 내가가 있는데 외가는 소림이 유명하고 내가는 무당의 장송계가 정통이다. 뭐 이런 내용이죠.
이 내용은 "조민욱 저, <칼끝에 천하를 춤추게하다>, 황금가지" 에 보면 내가권 편이 있는데요. 더 살을 붙여서 재미나게 적어놓으셨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외가계열인 소림보다는 내가 쪽을 좀 더 처주는 것 같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좀 인용하면
"내가의 술이 상대를 칠 때에는 반드시 그 혈을 치는데 혈에는 훈혈, 아혈, 사혈이 있으며 그 혈에 상응하여서 경중으로 치면 혹 죽기도 하고 혹은 기절하기도 하며 혹은 벙어리가 되기도 하는데 호발만큼도 어긋남이 없다"
혈을 치면 벙어리가 되기도 한다라...마치 무협지의 내용을 보는 것 같지 않나요?

이 다음에는 내가권의 수련법 중 근본이 되는 육로권과 십단금의 가결을 적고 뒤에 그에 대해 해설을 자세히 적고 있습니다.
이 가결이라는 것도 무협지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가결은 歌訣인데 즉 노래로된 비결이라고 보면 됩니다.
어떠한 동작에 대한 힌트들을 노래로 하여 기억하기 쉽고 동작연습에 도움이 되도록 한 것이죠.
무협지에서는 이 가결을 얻기 위해 피바람이 일어나기도 하죠. ㅎㅎ
무예를 전달함에 있어서 책이나 이런 도구의 도움이 없었을 때, 이런 방법을 이용했던 것이죠.
우리도 영어단어 외울때 말을 하면서 하면 더 잘외워지지 않습니까? 같은 이치인 것 같습니다. ^^

그 다음에는 무예도보통지에 기록한 도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요.
과거에는(즉 척계광의 책과 모원의의 책에는) 두사람이 마주보고 세를 취하고 있어 공격과 방어의 의미를 더하고 있었는데, 지금은(무예도보통지에는) 투로의 형태로 연결되어 있어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하고 마지막에 서로 얽혀서 씨름하는 것은 거의 유희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행해진지 오래되어 구보로 남겨두었다고 말하고, 그 중 소실된 10가지 세를 증보하여 결을 더하여 기록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잃어버린 10세라는 것은 이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은 흔히 말하는 송태조장권32세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예제보번역속집에서 2가지 세를 제외한 나머지 세를 이미 얻었었지만 무예도보통지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즉 권법보가 변형되면서 10가지가 사라졌기에 다시 가결의 형태로 적어놓았다는 것입니다.

기효신서에도 무예도보통지의 증10세는 빠진 22세만 나와있습니다. 무비지에서는 32세가 모두 나타나고 있고요.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은 22세와 + 오화전신세, 그리고 증10세 하여 엄밀하게 총 33세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기효신서와 무비지는 한페이지에 두사람이 마주보고 세를 취하고 있는 그림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는 세를 연결해놓은 투로의 형태로 그려져 있으며 마지막에는 두사람이 서로 씨름을 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은 현대에 와서는 몇몇 단체에서 행하고 있습니다만,
그 동작에 대한 해석차이로 인하여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해석 중 어느 것이 맞는 지는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2008/06/05 - [무예/십팔기] - 십팔기 중 권법 영상 
다음의 영상은 십팔기보존회 회원의 권법 시연영상입니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위에서 말씀드렸다 시피 혼자서 연습하다가 두명이 대련하는 형태로 나와있지만 그 것을 잃어버린 10세를 더하여 혼자 연습하는 투로로 변형한 것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저자들은 투로로 변형되면서 그 공격과 방어의 의미를 많이 상실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투로의 형태로 연습을 하는 것은 대련에 비하면 공격과 방어의 의미가 작을 수 있습니다. 대련을 하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무예의 동작에는 어떠한 것이나 공격과 방어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법입니다.
십팔기든 아니든 어떠한 무예를 수련하시는 분이라도 투로를 연습할 때는 한동작한동작 그 의미를 되새겨가며 연습하시길 바랍니다.^^(물론 저부터 연습열심히 하겠습니다..;;;;;ㅎㅎ)

무예도보통지는 조선 22대왕인 정조대에 편찬된 무예서로
조선시대 무예교본의 완성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은 임진왜란이후 약200년에 걸쳐서 무예서를 4권 간행하였습니다.
그 중 마지막이 바로 이 무예도보통지입니다.

무예도보통지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무예'를 '그림'으로 '계통을 밝혀' 서술한 책인 것입니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앞서 쓴 글인
2008/09/04 - [무예/십팔기] - 아직도 십팔기를 중국무술이라 알고 계신가요? - 십팔기란
에서 말씀 드린 바처럼 총 24가지 항목과 관복도설, 그리고 고이표가 4권에 나뉘어 수록되어있고, 각각의 무예에 대한 내용은 한글로 된 언해본 1권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아, 그리고 앞서 쓴글에서 빠뜨린 것 중에 병기총서와 기예질의 그리고 척계광과 모원의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병기총서는 무예도보통지를 만들기 이전 조선의 군에 관련된 사실들을 정리한 것이며
 기예질의는 애초에 임진왜란때 무예제보를 만들때에 담당자였던 한교가 명나라 장수에게 무예에 대해서 질문한 내용과 그 답을 적어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척계광과 모원의는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때 참고했던 여러 서적 중 가장 주되게 참고한 기효신서와 무비지의 저자인데 그들의 약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무예도보통지의 내용 중 본국검의 일부를 통해서 무예도보통지의 구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무예도보통지는 각 종목의 무기의 형태를 금식(조선의 지금의 형태), 화식(명나라의 형태) 왜식(일본의 형태)로 나누어 보여주고, 그 무기를 만드는 법부터 시작하여 각 기예의 내력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 뒤에 기예의 동작을 설명합니다.



위의 그림은 본국검보의 한 페이지로
"좌회 향전 작 장교분수세 우수우각 일타
잉작 백원출동세 거우수우각"
이라고 써놓고 밑에 각각의 세에 해당하는 그림을 그려놓았습니다.



위의 그림은 앞서 동작을 하나하나 그려놓았던 것을 그 세명을 이어서 보여주는 총보입니다. 이처럼 본국검이라는 하나의 투로는 여러가지 세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죠

보시면 글자의 방향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는 동작의 진행방향을 표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의 꼼꼼함을 알 수 있죠.




위에 나오는 것은 아까 보았던 총보를 그림과 함께 보여준 것으로 총도라고 합니다.
이 총도는 무예도보통지 이전에는 없던 것으로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면서 새롭게 창안된 것입니다.

세의 이름만으로 되어 있던 것을 그림과 곁들여 설명함으로써 글을 모르는 사람도 보기 쉬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글을 아는 사람도 더 보기 편했겠죠?

그리고 총보나 총도에서 보면 선들이 보입니다. 이 선들은 중간중간 원을 그리고 있는데요. 해당하는 동작에서 회전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동영상과 사진을 이용하여 무술교본을 만듭니다.
그러한 기술이 없었던 과거에는 이처럼 그림을 통하여 만들었고, 정확한 전달의 위해서 여러가지 표현을 고안하였습니다.

사실 요즘 시중에 나와있는 무술교본들과 비교하여도 꽤 훌륭하지 않나요?

9월 19일(금) - 21일(일)까지
서울 상암월드컵공원 일대에서 진행되는
2008대한민국전통연희축제(http://www.openpan.com/)에
한국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가 십팔기공연으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십팔기공연의 정확한 시간과 장소는
9월 21일(일) 12시30분-13시까지
9월 20일(토) 7시30분-8시까지
전통연희축제 특설무대 라고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사실 무예와 전통연희는 어떻게 보면 이색적인 조합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십팔기를 알리기 위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블로그의 주된 주제 중 하나인 십팔기
그러나.. 블로그를 만든지 100일이나 지났으나.. 십팔기에 대해서 설명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십팔기라고 말하면 중국무술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중국의 십팔반무기 혹은 십팔반병기로 생각하는 사람을 많이 만납니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의 전통무예인 십팔기를 좀 알려보고자 블로그를 만든 것인데..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를 빼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십팔기는 "임진왜란기 부터 정조대왕대까지 약200년간 조선에서 정립한 무예"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십팔기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명에 따라 1598년에 편찬된
<무예제보>에서부터 임진왜란이 끝난 후 1601년에 <무예제보번역속집>
그 후 영조35년에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면서 편찬했던 <무예신보>(1735)
그리고 정조14년인 1790년 <무예도보통지>에 이르는 약200년간 조선에서
한 중 일의 삼국의 무예를 모아서 정리한 전통무예인 것입니다.

그 무예도보통지의 내용을 보면 순서대로

권1에 장창, 죽장창, 기창(旗槍), 당파, 기창(騎槍), 낭선

권2에 쌍수도, 예도, 왜검(교전)

권3에 제독검, 본국검, 쌍검, 마상쌍검, 월도, 마상월도, 협도, 등패

권4에 권법, 곤봉, 편곤, 마상편곤, 격구, 마상재

그리고 부록으로 관복에 대한 설명인 관복도설과 각군영별 기예의 차이점을 적어놓은 고이표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무예도보통지의 무예이름은 십팔기라고 하였는데 책에 수록된 기예는 왜검교전을 따로 세어서 24가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십팔기인가? 십팔기라는 명칭은 앞서 말했던 사도세자의 명에 의해 편찬된 <무예신보>의 단계에서 정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정조대왕은 그 내용에 마상기예들과 격구 마상재를 더 넣어서 책으로 간행한 것이죠. 이름은 그대로 두고요.
이 십팔기의 명칭은 정조의 생부인 사도세자가 명칭을 지은 것이라고 정조14년(1790)에 편찬된 <무예도보통지>의 서문에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서문의 내용은 해석에 따라 조선후기의 공식무예의 명칭이 십팔기였는가, 아니면 이십사기였는가가 명확치 않았습니다.



그에 대한 내용은 위의 논문을 참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튼 위의 논문에 따라 조선후기 공식무예의 명칭은 십팔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십팔기가 역사의 위기속에서 어느샌가 우리의 기억속에 중국무술로 기억되어 있었습니다. 흔히 쿵후십팔기라고 알고 계시지요.
주변 사람들에게 십팔기를 배운다고 말했을때
제 또래인 대학생들은 그게 뭔지 모르거나.. 아니면 대충 중국의 십팔반무예인가보다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른들의 경우에는 쿵후십팔기라고 예전에 다들 중국무술로 알고 있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경우를 종종 보곤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예전에는 쿵후십팔기라고 중국무술이라 알고계셨지만.. 요즘 보니까 그게 한국꺼라 들었다고 말씀하신 분이 있어서 감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십팔기를 중국무술로 오해하게 되었을까요?
그 원인 중 가장 큰 한가지는 바로 십팔반병기, 십팔반무예라고 하는 중국의 말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십팔반병기라고 하는 말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무예십팔번이라고 하여 각기 다른 내용으로 존재하였습니다. 게다가 중국과 일본의 십팔반은 시기에 따라 그 내용이 계속 변화하였으며, 단지 무예의 총칭으로써 사용된 어휘였습니다. 어떠한 특정한 무예나 기술체계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의 십팔반은
활(弓), 쇠뇌(弩), 창(槍), 칼(刀), 검(劍), 모(矛), 방패(盾), 도끼(斧), 월(鉞), 극(戟), 편(鞭), 간(簡), 고(槁), 수(
殳),
차(叉), 파두(把斗), 면승투색(綿繩套索), 백타(百打) (中國大百科全書』「體育」편) 
일본의 십팔반은
마술(馬術), 궁술(弓術), 창술(槍術), 검술(劍術), 단도술(短刀術), 발도술(拔刀術), 치도술(刀術), 포술(砲術), 수리검술, 수영술(水泳術), 유술(柔術), 십수술, 쇄겸술, 포수술(捕手術), 봉술, 함침술(含針術), 모지리술, 인술(忍術) (『무기와 방어구 :  일본편』 )

이라고 합니다. 그 내용에 차이가 있음을 알수 있죠?

또 한가지 원인은 한국에 무예도장이 형성될 당시 쿵푸의 유행을 들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최초의 십팔기도장에서도 쿵푸라는 이름을 달 필요가 있었다고 하니까요.

그에 대해서는 인터넷신문 데일리안의 칼럼인 신성대의 무예이야기 9번과 11번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보러가기-> (9) ,(11) )

또한 그 외에 현재 십팔기보존회, 십팔기협회의 무예는 중국무술이다라는 논란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오해는 아무래도 초기 십팔기협회에 쿵푸도장이 속해있었던 것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게다가 당시 십팔기협회의 단증의 뒷면 영문에는 kungfu sibpalki 라고 적혀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마샬아트라는 용어보다 쿵푸라는 영문용어가 더 널리알려져있고 친숙했다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제가 쓴 글 중에도
2008/06/05 - [무예/십팔기] - 대한십팔기협회와 대한쿵푸협회란 글을 보면
십팔기협회와 쿵푸협회는 단증발급을 위해서 함께 공존했던 관계이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포함하는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여튼 십팔기는 조선후기의 공식무예의 명칭이며, 한국의 전통무예입니다.
절대 중국의 우슈와 혼동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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